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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에세이 수필집

책 리뷰: 김중혁의 무엇이든 쓰게 된다

by cardo 2020. 3. 26.

읽어봐요. 읽어보면 재밌고 볼만해요. 그리고 창작의 비밀을 그만 파고, 노트북 전원을 켜거나 굴러다니는 연필을 붙잡고 쓰게 돼요. 정말로. 나 지금 쓰고 있잖아요? 내 마음대로.

책과 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빠질 수 없는 주제는 '글 잘 쓰는 법', '유명 소설가의 창작 노하우', '소설가가 된 계기 혹은 비법'일 것이다. 나도 소설 창작 인강을 듣고, 창작법 관련 책을 읽고, 하루키와 그 외 수많은 소설가의 짧고 긴 에세이와 글을 읽었다. 너무 궁금하다.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을까

 

소설가 김중혁과 첫 만남은 '나는 농담이다'라는 소설이었다. 그전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일었고, 책 디자인이 너무 이뻐서 샀다. 술술 읽혔고, 우주를 약간 다룬, 스탠딩 코미디언의 이야기라 재밌게 읽었다. 중간중간 인상 깊은 구절도 있었고, 상상도 있었다.

 

그럼 '무엇이든 쓰게 된다'로 돌아와, 이 책은 뭘 이야기하고 있을까?

 

부제가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이라는데 이건 순 뻥이면서 순 참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소설가의 창작에 관한 에세이는 결코 아니다. 처음부터 당당하다.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 아니, 난 글쓰기 위해 도구를 찾고 또 찾는다. 그리고 재미를 느낀다. 오히려 흥미롭다. 본인의 뚜렷한 취향과 만족. 필기구와 창작을 위한 애용품을 재밌게 소개한다. 창작의 도구들을 읽으면서 습작생이라면 당연히 느낄 '오, 이 소설가는 이걸 쓰기 때문에 글을 잘 쓰나?' 하는 열등감 섞인 어이없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 도구들이 탐나보인다.

 

나머지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 그림 그리기에 관한 이야기는 거칠게 요약하자면, 너 내키는 대로 해라. 단, 쓰고 싶으면 일단 써라. 누가 '이런 게 좋다. 저런 게 좋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저래서는 안 된다'하면 적당히 휘둘리라고 말한다. 김중혁 소설가는 당당하다. (요즘 당당한 사람이 좋다. 하루키도 그렇고, 이 분도 그렇고, 나도 당당해지련다, 죄송합니다 한데 묶일 수 있는 게 아닌데)

 

잠깐,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창작의 비밀이 뭔데?

마지막에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에필로그에서 나온다. 소설 '용서해줘, 레너드 피콕'의 대목을 들고 왔다. '실제로 미술관에서 이보다 더한 걸로, 새하얀 캔버스 위에 가늘고 붉은 줄 하나를 세로로 찍 그어놓은 작품도 봤다. 헤어 실버맨에게 그 붉은 줄 그림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런 건 나도 하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안 했잖아."

주인공 레너드 피콕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얇고 희미한 붉은 줄 하나일 뿐이지만 그걸 긋는 것과 긋지 못한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비난하기 쉽지만 선을 긋는 건 어렵다. 비꼬는 건 간단하지만, 첫 문장을 시작하는 건 어렵다.

 

그리고 김중혁은 모든 창작물과 창작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마지막에 밝힌다.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소설을 쓸 때마다 막막하고 괴로움을 느껴 본 사람으로서, 난 예비 창작자, 창작자를 존중하고 사랑한다. 그 모든 시도를 응원한다고 전한다.

 

창작의 비밀은 일단 창작하는 데 있다.

유명 소설가들의 창작법과 소설 쓰는 노하우, 문예 창작 이론을 공부하고 읽는 건 오히려 쉽다. 하지만 직접 쓰기까지 그 막막함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기는 어렵다. 나도 날 응원한다. 언젠가 멋진 글을 쓸 놈이니까. 그리고 나 같은 분들, 나보다 시작 덜 한 분들, 나보다 훨씬 나아간 분들, 이미 저 멀리 고점에서 나를 내려다볼 분들 모두 응원하고 사랑한다. 당신들의 창작물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
국내도서
저자 : 김중혁
출판 : 위즈덤하우스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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