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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에세이 수필집

책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by cardo 2020. 4. 1.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가 좋다. 하루키 일상의 여백도, 잡문집도,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그리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렇다. 소설은 어둠의 저편과 노르웨이의 숲,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었다. 아직 그의 대표 장편 ‘1Q84’와 최근 ‘기사단장 죽이기’는 읽지 못했지만 그의 문체나 색깔은 조금 알지 않을까 하는 정도다.

 

그의 에세이는 소설만큼 매력적인 그의 삶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을 표현한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소한 일상의 여유, 조직이나 국가에 속하지 않고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은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던 삶의 태도이고, 그러한 삶의 표본이다.

 

나도 그렇다. 어릴 때부터 세계여행을 꿈꾸고 낭만을 그렸다. 고등학생 때는 세계 여행을 다니는 여행 작가가 꿈이고, 20살 때는 파리지앵이 꿈이라 했다.(지금 생각하면 정말 오글거린다...) 9 to 6 라이프, 즉 출퇴근하는 샐러리맨 삶을 꿈꾸거나 선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런 부분이 자연스럽게 취업을 준비할 시기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치열하게 대기업/공기업이라는 타이틀과 연봉보다는 작지만 확실히 내가 주체적이고 자유로울 수 있는 스타트업이나 소기업에 더 눈이 갔고, 결국 그런 곳에 취업해 일하고 있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가졌기에 하루키 에세이집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그의 소설은 허무하고, 섹스를 다루고, 뭔가 나사 하나 빠진 전문직 도쿄 남자 청년이 주인공이다. 그것보다 그가 이야기하는 허구의 세계보다 그 작가가 나에게 더 매력적이기 때문에 에세이에 눈이 가는 것 같다.

 

달리는 그런 그를 잘 나타내는 운동이다. 홀로 운동화 하나 있으면 언제 어느곳이든 누구랑 하든 상관없이 할 수 있다. 나 홀로 세상을 맞이하는 운동이고 내가 시작하고 끝내는 운동이다. 하지만 하루키도 나름 경쟁을 즐긴다. 트라이슬론 경기나 마라톤 경기에서 추월당하고 추월하는 것을 의식하고, 완주하기 힘들었거나, 완주하면서 느낀 점을 정리하고, 러닝 중에 만난 사람들과 인사한다.

 

장편 소설가로서 긴 집필 활동을 이어나갈 체력을 갖추고, 꾸준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나감으로써 ‘재능’을 계속해서 파낸다. 이 자세야말로 정말 배울 점이 많지 않을까 하고 느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할 충분한 체력을 갖추고, 업을 꾸준히 하며 재능과 능력을 키워 나간다. 욕심내지도 조급해 하지도 않고 천천히 파낸다. 자칭 ‘범인(보통사람)’이라 칭하는 하루키가 유명한 소설가, 한 시대와 아시아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클 수 있었던 전략이라고 전한다.

 

그는 스스로 미화하거나 위인화하지 않는다. 절대 보통사람 너머로 생각하지 않는 겸손한 자세를 갖고 있다. 아니 '하루키 정도면 이 정도 표현은 아니잖아'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의 철학에 있지 않을까. 시스템과 개인. 그 개인의 보통성. 그 편에 서겠다는 하루키는 소설도, 에세이도, 그의 모든 글도, 그의 철학에 귀결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를 존경한다.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하고 싶은 이야기
국내도서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 / 임홍빈역
출판 : 문학사상 2009.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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