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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리뷰/영화리뷰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화 붉은 돼지를 보고 나서(명대사, 배경, 줄거리, 소감)

by cardo 2020. 3. 23.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인 편이 나아
돼지에겐 나라도 법도 없어

이런 말을 구사하는 돼지가 만화에 나온다면 어떨까. 멋진 콧수염과 빼어난 비행실력은 덤이다. 그는 로맨티시스트다. 시니컬해 보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녔고, 우정과 인류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붉은 돼지 포르코는 이 시대의 낭만주의자다.

 

붉은 돼지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비행정 시대에 지중해를 배경으로 하늘의 해적을 상대하고, 명예와 여인 그리고 돈을 걸고 싸우는 돼지 비행사의 이야기다. 공적을 무찌르고, 이 공적들은 붉은 돼지를 상대하기 위해 연합하고 미국 조종사까지 끌여들인다. 여인과 돈을 걸로 일대일 결투를 하는 그런 이야기다.

 

스튜디오 지브리 90년대, 2000년대 훌륭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로 유명하다. 거품경제 시절이던 때부터 고퀄리티와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화 그리고 뭔가 모를 아련함을 선사하는 판타지 서사로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그중 붉은 돼지는 가장 많은 찬사를 받고 인정 받은 작품 중 하나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낭만적인 비행정 시대를 그리고, 그 주인공의 대사 하나하나도 결코 가볍지 않다. 개인적으로 잘 쓴 단편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재미를 느꼈다. 서사는 단순하고, 특별한 장치는 없지만 깔끔하고 매혹적인 이야기와 같았다.

 

나도 영화 붉은 돼지를 처음 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여년 전 중학생 때였다. 사촌 형이 준 DVD로 (다운로드로 구운 듯하다) 접했는데, 그때는 이유도 없이 그냥 재미있어서 연거푸 2번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30살이 된 지금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보니 그 아련함과 재미가 더욱 크더라. 그때는 몰랐을 붉은 돼지의 한 개인으로서 신념과 낭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라도 법도 신경 쓰지 않고 내 낭만을 지키며 멋지게 살아가기 힘든 세상인만큼 붉은 돼지의 의연함과 단단함은 달라 보인다.

 

인기 많은 마담 지나의 속마음도 알면서 모르는 체 넘어가고(일개 돼지임을 알기에), 피오의 애정공세에도 떠난다. 붉은 돼지는 그렇다. 전쟁을 경험하며 전우를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는 경험, 파시즘으로 국가가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혼자만이라도 떳떳한 개인으로서 자유를 지키고 그의 의지대로 끝까지 살아간다. 그는 지금도 담배 한 개비 물며 껄껄 웃으며 '나는 그냥 날으는 돼지일 뿐이오.' 하며 멋지게 비행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