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국민 브랜드로 등극한 파타고니아지만 몇 년 전 한국에는 아직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였다. 매거진 B에서 파타고니아 브랜드를 다루고 친환경 브랜드 및 기업의 사회적 공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파타고니아는 더욱 알려졌다. 그리고 쿨한 힙스터들이 파타고니아 플리스를 입기 시작하면서 마니아층은 더욱 커졌다.
친환경 기업과 자연 보호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파타고니아보다는 이본 취나드라는 사람이 궁금했고, 기다림 끝에 겨우 절판된 도서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할 수 있었다.
거칠게 이본 취나드의 경영 철학을 요약하자면,
1. 진심(Authentic) - 기업가와 생산자 스스로가 고객
2. 브랜드 스토리텔링 - 카탈로그
3. 공동체 의식(미래에 대한 고민)
4. 과감한 도전과 확장(피톤을 대체한 쐐기)
5. 신뢰를 기반으로한 느슨한 연대
이 5가지 키워드로 묶을 수 있다. (순전히 내 주관적인 기준이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이었기에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 영어를 잘 못하고 어릴 때부터 왜소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서 자연과 놀았던 이본 취나드다. 크면서 쌓아온 경험은 대다수 경영인과 달리 등산, 서핑, 캠핑이 주를 이루었다. 이본 취나드는 몇 달 동안 오두막에서 지내며 서핑을 즐기거나 훌쩍 남미로 떠나 파타고니아를 등반하고, 틈만 나면 플라잉 낚시를 즐기는 자연인이다.
이랬던 이본이 기업을 세우게 된 계기도 등산 장비였다. 자기가 쓰기 위해 튼튼한 피톤과 각종 도구를 직접 생산하다가 주변 산악인들에게 판매를 시작했고 점차 품질을 인정받아 회사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파타고니아의 시초부터 생산자 스스로 고객인 진심이 담겨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작은 브랜드였고, 주요 고객 타겟층은 등산 매니아층이었기에 가까운 소비자는 적었다. 하지만 미 전역의 잠재 소비자들에게 팔기 위해 시작한 세일즈 방식이 카탈로그다. 파타고니아의 카탈로그는 유명 잡지와 버금갈 정도의 문체와 필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피톤을 쐐기로 대체하면서 그 이유와 이본 취나드가 생각하는 클린 클라이밍 그리고 야외활동에 대한 철학을 자세하고 명료하게 설명했다고 한다. 브랜드 스토리텔링이 담긴 카탈로그를 보고 피톤 주문량은 급격하게 줄었지만 쐐기 주문량은 급격하게 늘었다. 카탈로그는 파타고니아가 생각한 진심과 상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 고객이 제대로 알고 구매해주길 원하는 스토리텔링이 통하는 방식이었다.
회사가 꾸준히 커지면서 기업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이본 취나드는 애초에 경영인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무도 엉망이었고, 경영 방식도 엉망이었다고 한다. 훌쩍 떠나 장기간 산악 등반을 하기 일쑤였고 그런 직원들이 일했다. 차츰 제대로 기업의 형태가 생겨난 계기는 이본 취나드가 생각하는 기업의 역할이 정립되면서부터다.
기업 경영을 통해 자본주의에서 목소리와 힘을 얻고, 이를 올바른 방향, 미래 세대를 위한 공동체를 이끄는 힘으로 사용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큰 규모의 보호단체가 아닌 풀뿌리 운동 단체에 직접 후원하고 회사가 위치한 공동체부터 시작해 작은 곳에서 시작하는 지원 한다. 이는 파타고니아가 기업으로서 가지는 책임감과 방향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파타고니아의 성장이 훌쩍 커질 때마다 그 계기가 되었던 것은 과감한 도전과 확장이었다. 초기 등반 장비에서 시작했으나 클라이밍을 할 때 입으면 좋을 것 같은 의류를 판매하기 시작해서 더욱 많은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피톤을 대체한 쐐기, 모든 면직물 제품을 유기농 면화로 교체하는 등 브랜드 철학과 일치한다면 과감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이는 더 큰 성장으로 이어졌다.
파타고니아의 회사 문화도 독특하다. 선진적인 복지로 유명한데, 미국 기업체로서 거의 최초로 도입한 사내 유치원, 출산 휴가 그리고 높은 여성 고용률을 자랑한다. 직원이 필요하다면 제공한다. 파타고니아 본사 주차장에서는 자발적으로 로컬 마켓이 열리고, 좋은 파도가 칠 때는 근무 시간에도 서핑하러 달려간다. 시민운동을 하기 위해서 회사를 나가지 않아도 유급휴가를 제공한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이 우리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을 믿고, 당신이 행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철학과 일치한다는 신뢰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직원은 장기근속과 우수한 실적으로 보답하고, 주변의 좋은 인재를 내부 채용으로 추천하고 기업은 더욱 견고해진다.
책을 읽으며 파타고니아가 멋진 기업인 이유는 이본 취나드라는 멋진 경영인을 닮았기 때문이고, 이본 취나드가 멋진 경영인인 이유는 자신에게 솔직하고, 자연을 닮았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와 같은 멋진 철학을 가진 우리나라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타트업부터 사회적 기업, 그리고 대기업까지 이 시대의 가치와 미래 세대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파타고니아와 이본 취나드만큼 진정성 있는 기업들은 찾기 어렵다. 트렌드와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에 맞추는 모습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니즈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파타고니아만큼 설립부터 성장 그리고 미래까지 '진짜(Originality'를 지닌 기업이 찾기 어렵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밑줄 친 구절
직장에 나가는 게 즐거워야 함은 물론 사무실에 올라갈 때 절로 한거번에 두 계단씩 뛰어올라가고 싶은 심정이 돼야 한다. 편한 복장을 한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일하면 얼마나 좋은가. 맨발이면 또 어떤가, 멋진 파도가 몰려오면 파도를 타러 갈 수 있어야 하고, 눈이 본 때 있게 오면 스키를 타러 가야 한다. 어린애가 아프면 집에 머물면서 돌봐 주는 게 옳다. 직장과 취미와 가정 사이의 경계를 좀 희미하게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을 해도 80%선에서 그치고 더 나가지 않으려 한다. 그건 스포츠가 되었든 활동이 되었든 마찬가지다. 그 이상은 말하자면 '무엇에 빠진' 혹은 '만사 젖힌'상태가 되는 건데 나는 그런 건 별로다. 내 생각에 한 80%쯤 됐다 싶으면 손을 떼고 완전히 다른 일에 착수한다.
성장을 뒷받침한다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사무실 부족에 원료 공급업체, 은행거래, 내부 정보체계, 인력관리 등 어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진실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알고 그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최상의 제품을 만들고, 자연과 환경에 불필요한 해악을 끼치지 말 것이며, 비즈니스를 통해 환경 위기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실천한다.
경영을 잘하는 회사일수록 제품의 종류를 최소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소비자로서 또 훌륭한 시민으로서 가장 책임감 있게 옷을 사 입는 방식은 헌 옷을 사 입는 것이다.
작업복이라면 진짜 목수, 진짜 지붕 기술자, 진짜 석수들이 입고 일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하고, 럭비 유니폼이면 그걸 입고 럭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초기 카탈로그부터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스트레스 없이는 진화가 없으며, 그 진화는 급격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유한회사는 인간을 자기들이 저지른 짓으로부터 떼어 놓는 제도로서 사람들을 비인간화한다.
우리를 더 이상 시민이라 하지 않고 소비자라고 부르는 건 그 점에서 일리가 있다.
절판된 도서라 최대한 상세히 책 내용을 담고 요약했다. 더이상 구매하지 못하는 분들은 이 글을 보고 이본 취나드의 파타고니아 경영 철학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파도가 칠때는 서핑을'은 훌륭한 경영 철학 도서인만큼 재발간되면 좋겠다.
'도서리뷰 > 비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덱스펀드의 창시자 존 보글이 쓴 책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 리뷰 (0) | 2020.03.20 |
---|---|
If you Can How Millennials Can Get Rich Slowly 요약 정리 및 원본 공유 (2) | 2020.03.19 |
백만장자 시크릿, 경제적 자유와 부를 쌓는 법에 대한 교과서 (0) | 2020.03.10 |
금융꼬꼬마의 워런 버핏 바이블 후기 서평 리뷰, 가치 투자를 넘어 버핏 그 자체를 배울 수 있는 책 (0) | 2020.02.15 |
금융꼬꼬마가 읽고 정리한 가치 투자의 정석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 요약 정리 및 실천 (0) | 2020.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