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쿠바에서 한 달간 지내며 쿠바 사람들 몇 명정도 알게 되었다. 친구나 여행 일행으로는 만나지 못했지만 까사 주인들과 현지 투어 가이드를 사귈 기회가 있었다.
쿠바에서 가장 처음 만난 쿠바인은 '르네'다. 르네는 내가 머문 아바나 숙소의 관리자이자 주인이고, 30대 남성이다. 공항 근처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고, 작은 오토바이 수리 샵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대다수 쿠바인들은 정부에 고용되었거나 가내 수공업과 상업을 하거나 혹은 둘 다 한다.
따로 공항에 마중나와달라고 요청했었다. 아바나에서 처음 택시 잡기란 힘든 데다 바가지 씌기 딱 좋아서 현지인이 마중 나와 택시를 잡아주면 든든하다. 우리를 보자마자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영어는 잘못하지만 표정은 밝은 친구였다.
능숙하게 아우디 택시를 잡아주었고, 숙소를 안내했다. 숙소를 보여주고 샤워기나 화장실, 주방, TV 등 이곳저곳 능숙하게 설명해주었다. 와이파이 카드를 물어보니 함께 나가서 근처에 위치한 호텔 베다도에 데려다주었다. 와이파이 카드를 하나씩 손에 쥐고 르네의 설명을 열심히 들었다. 우리가 가리키며 묻는 식당 하나하나에 대해 '부에노'를 연발하는 친구였다. 모든 게 좋고, 낯선 아시아 여행객이 쿠바에 대해 좋은 추억을 쌓길 바라는 게 진심으로 느껴졌다.
르네는 열심히 말하면서 손짓을 많이 했는데 마치 이탈리아인 같았다. 제스처는 능숙한 지휘자처럼 우아하면서도 능숙했고 우리는 그의 부드러운 손길에 따라 쿠바에 안착했다.
아바나에서 3주 넘게 지냈는데 르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아이폰을 슈퍼마켓에서 잃어버려 경찰서에 갔다 오고 르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었는데 직접 함께 가주었다. 우리나라로 비추어 보면 경찰서 한 번 같이 가주는게 뭐 그리 고마운 일인가 싶을 수도 있다. 쿠바 경찰서는 점심시간 은행보다도 더 기다려야 한다. 사람도 없고 조용하나 일처리가 느린 건지 아니면 복잡한 건지 오전 10시에 도착하였는데 실제로 담당 경찰관을 보고 사건을 접수한 시간은 오후 2시였다. 그때까지 르네는 발을 동동 구르며 땀을 훔치고, 연신 담배를 폈다. 영어를 잘 못하지만 우리에게 더 쉬운 스페인어와 섬세한 바디랭귀지로 통역도 해준 고마운 친구다.
경찰서로 가는 길에 이것저것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내가 "피델 카스트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자, 르네는 팔을 구브려 팔뚝 근육이 도드라지게 한 뒤 "마치 빅 브라더 같지. 큰 형님 같은 존재야"라고 답했다. 나는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나오는 빅 브라더와 오묘히 생각이 겹쳤다. 르네가 1984의 빅 브라더를 알고 비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만난 현지인은 트리니다드의 차메로다. 트리니다드 여행을 준비하거나 갔다 온 사람은 거의 모두 알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일명 '갓메로'다.
차메로는 트리니다드에서 까사를 운영하고 있는 여행 사업가다. 특유의 친근함과 적극성 그리고 매너로 한국인 관광객의 '정'을 건든 인물이다. 실제로 3박 4일을 지냈는데 감탄에 감탄을 더할 정도의 매너와 센스를 가졌다. 딱딱한 사회주의 쿠바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대도시 아바나에서 치이며 받은 수모와 상처를 치료해주는 연고 같았다.
들어서자마자 호탕하게 인사하며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 정도는 던질 줄 아는 친구다. 자기 까사를 찾아오느라 땀에 찌든 방문객에게 망고주스나 아이스커피를 먼저 권한다. 이는 자기 까사의 투숙객이 아니라도 해당된다. 언제든 방문해서 시원한 망고 주스를 마실 수 있다. 이 망고 주스는 관자놀이가 쫙 당길 듯한 시원함과 혀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단맛을 자랑한다.
차메로네 집에 지내면서 이것저것 부탁도 하고 물어보니 기초 영어로 모든 걸 대답해주고 찾아준다. 차메로 덕분에 트리니다드 여행에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항상 흥정하고 논쟁해야 하는 아바나에서 잠시나마 쉴 오아시스가 되어주었다.
함께 시가를 피며 내가 말했다.
"넌 참 친절하고 나이스하다. 비즈니스도 잘 운영하고"
차메로는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비즈니스는 비즈니스고, 친구는 친구라고 하지. 난 친구와 비즈니스 둘 다 얻는 사람이야."
그리고 손가락으로 자기가 쓰고 있는 스냅백을 가리켰다. 스냅백에는 '차메로'라고 한글 자수가 쓰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쿠바인은 '빅'이다. 빅은 에어비앤비 현지 트립 가이드다. 쿠바인 변호사와 함께하는 올드 아바나 역사 투어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호스트다. 빅은 이전의 까사 주인들과는 다른 유럽계 인종의 느낌을 가졌다. 직업도 변호사고, 좋은 지역의 아파트에 지낸다.
역사 투어라지만 사실 변변찮다. 쿠바인 억양이 묻어나오는 능숙한 영어로 이것저것 설명해주는데 옛날 하수처리 시스템이라던지 전쟁 이야기 따위를 말했다. 그리고 자꾸 예전 투어에 있었던 섹시한 한국인 여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몸매가 어매이징 했다고. 투어 중간중간 어여쁜 여성이 지나갈 때마다 '어휴' '오 마이 갓'등의 감탄사를 연발했다.
투어 도중 잠깐 쉬는 시간에 빅은 휴대폰 화면 속 자기 아기의 사진을 보여줬다. 아내와 아기를 보여주며 사랑스럽지 않냐고 웃었다. 자식을 위해 최근에 좋은 지역으로 이사했고, 이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비즈니스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나가는 여성을 아무렇지 않게 훑고 휘파람 불지만, 토끼같은 자식과 아내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가장이기도 하다.
투어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야기 소재가 떨어질 쯤에 내가 조금은 사적인 질문들을 물었다.
"변호사라고 했는데 쿠바에서 변호사는 어떻게 될 수 있니?"라고 물었다.
"쿠바에서는 자격 같은건 없고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하면 돼"라고 그는 답했다.
"그러면 쿠바 변호사로서 얼마 버는지 물어봐도 되니?" "대충 50쿡 정도 벌어" "50 쿡? 500 쿡 아니고?"
"응, 의사는 대충 60쿡 조금 더 벌고, 변호사는 50 쿡 벌어." (월 50쿡인지 건당 50쿡인지 지금은 아리송하지만, 확실히 아바나 관광 택시 기사보다 훨씬 적게 번다)
"쿠바 변호사는 일을 어떻게 하니? 넌 변호사 일 안 하고 지금 투어해도 되니?"
"쿠바 변호사는 모두 국가 소속이야. 국민들에게 전반적인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해. 그래서 국민이 법률 서비스 필요할 때 국가에 요청하면 국가가 배정해줘. 국가에서 월급을 받기 때문에 얼마 못 벌어. 먼 지역에 사건을 배정받는 날이면 교통비랑 식비랑 여타 비용과 시간 제하면 뭐 얼마 남지도 않아."
나는 그럼 왜 변호사를 택했냐고 물었고, 내 말에서 뭔가 느꼈는지 약간 불편한 표정으로 "오직 수입(돈) 때문에 직업을 선택하지 않아"라고 답했다. 난 내 경솔했던 질문이 조금 부끄러웠고, 미안하다고 답했다.
괜찮다고 말하며 빅은 쿠바 현지 사정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쿠바에서 자기 집을 소유하기란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국가에서 주는 무료 임대 주택이다. 무료인 대신 조건이 너무 열악하여 사람들은 기피한다고 한다. 두 번째는 국가한테 돈을 내는 유료 임대 주택, 그나마 첫 번째 조건보다는 나은 환경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기 집을 구매하는 방법인데, 비싸지만 확실하고 1가구당 1채만 가능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사회주의 국가지만 개인 소유에 대한 욕구는 막을 수 없다.
빅은 모네다 동전과 명함을 주며 투어를 마무리했다. 그는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것이다. 주택 대출로 월 300 쿡씩 갚아야 하 한다. 변호사 월급으로 턱없이 부족하므로 관광 사업을 시작했다. 까사도 운영하고, 올드카 투어 에이전시도 담당한다. 중간중간 에어비앤비 트립으로 투어도 진행한다. 지나가는 여자를 좋아하는 변호사이자 사업가인 빅의 휴대폰 배경화면은 해맑게 웃고 있는 아들 사진이다. 자기 자식을 배경화면으로 저장해두는 것은 우리나라 어느 가장과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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