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 와서 오랜만에 느낀 불편함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중 가장 시각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파리와 쓰레기통이다.(가장 촉각적인 것은 푹 꺼진 침대였다)
식당에 들어가면 하나같이 파리가 날리고 또 날린다. 처음에는 경악했다. 식당에서 파리라니 위생이 더러운 것 아닌가 싶었지만 아무리 많이 먹어도 탈 난 적이 없었다. 점점 자연스럽게 파리와 위생관념을 떼어놓기 시작했고 어느새 파리 떼가 날려도 손으로 휘휘 쫓아내며 열심히 입에 넣기 바빴다.
그리고 두 번째 시각적 충격은 엄청난 크기의 쓰레기통이 길거리에 있던 모습이었다. 어느 정도로 크냐면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에 있는 일반쓰레기 모아두는 큰 통을 혹시 아는가? 그것만 한 쓰레기통이 길거리에 그냥 놓여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봉투로 꽁꽁 싸매서 버리는 게 아니라 그냥 쓰레기다 싶은 건 다 버려져 있다. 배추 껍데기와 헌 옷, 각종 일반 쓰레기부터 건축물 폐자재까지 봤다. 그냥 마구잡이로 던져 넣은 듯하다.
너무 거대한 양이라 치울 엄두가 나지도 않을 텐데 어느날 어느 순간 보면 말끔하게 비워져 있다. 쓰레기를 배출하고 치우는 것만 봐도 이것이 쿠바라는 국가인가! 하는 마음이 든다. 버리는 것도 체계없고 치우는 것도 두서없지만 분명히 말끔하게 비워버린다.
아바나에서 지내는 동안 자주 가던 아침 식당이 있었다. 평상시는 커피 및 식음료를 파는 일반 카페테리아인데 아침 시간에만 조식 뷔페를 운영한다. 가격은 3 쿡인데 양도 푸짐하고 맛도 괜찮아서 자주 갔다. 거기서 아침을 먹으면 하루 종일 든든하다.
딱 하나 단점이 있으니 가게 바로 앞에 그 거대한 쓰레기통이 있다는 점이다. 식당은 골목 사거리에 위치했는데 그 맞은편에 아까 말한 거대한 쓰레기통이 체계없는 쓰레기들로 꽉 차있다. 그리고 여기 식당은 출입문이 없다. 문을 열 때는 셔터를 올리고 닫을 때는 내리니까 식당 운영 중에는 항상 오픈된 상태인 것이다.
생일잔치상보다 더 푸짐한 쓰레기들로 꽉 찬 쓰레기통을 바라보면서 내 음식을 탐내는 파리를 손으로 쫓으며 태연하게 쿠바식 아침을 먹고 있으면 나도 쿠바에 곧잘 적응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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