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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by cardo 2020. 3. 24.

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한 국가라는 시스템 안에 두 세계가 공존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화폐를 사용한다. 자본주의가 아닌 국가들도 화폐가 있다. 즉, 돈은 인간들의 세상을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뭐 사람마다 그 중요도는 다르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쓰고, 벌고, 지니는 거니까.

 

이 화폐는 화폐마다 한 세계를 구축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우리나라 통화인 '원'의 세상이 있는 것이다. 이 '원'은 미국의 '달러'와 다른 가치를 가지고 다른 세상에 있다. '원'과 '달러'를 바꾸기 위해서는 두 세계(미국과 한국) 간 비교한다. 가치를 비교하는 셈인데 바꿀 수는 있지만 매번 다른 금액이 된다.

 

서론이 길었다. 그럼 대충 눈치챌 독자분도 있을 것이다. 쿠바에는 왜 두 세계가 있냐 하면 화폐 통화가 2개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거창한 것을 원했다면 조금 미안하지만 화폐가 2개가 있다는 건 정말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한다는 말과 같다. 기회가 된다면 쿠바를 방문해보길 바란다. 이왕이면 길게. 그래야 이 화폐 2종류가 낳는 기괴한 평행 세계를 볼 수 있으니까.

 

쿠바 통화는 외국인 전용 화폐 CUC(쎄우쎄, 쿡으로 불리는데 이 글에서는 쿡으로 통일하겠다)와 내국인 전용 화폐 CUP(쎼우뻬 혹은 모네다로 불리는데 여기서는 모네다로 통일)가 있다. 쿡(CUC)은 미화 1달러와 가치가 같고, 모네다(CUP)는 보통 1 쿡의 20~25분의 1 가치다. 1 모네다가 25개 있으면 1 쿡인 셈이다.

 

가치 차이가 꽤 크지 않나? 이는 위대한 카스트로 동지가 관광산업을 국가 경제로 지정하고, 외국인 관광객의 외화 달러를 빨아당기기 위해 만든 화폐 정책이다. 

 

이게 왜 심각하냐면 물가 차이가 굉장하게 크다는 점이다. 포르쉐와 티코가 한 트랙에서 같이 달리는 것 같은 차이가 벌어진다. 포르셰는 빠르게 몇 바퀴째 돌아가는데 티코는 이제 한 바퀴 다 돈 셈이다. 현지 물가와 외국인이 쏟아내는 돈의 가치와 수량의 괴리가 발생한다.

 

외국인 통화 '쿡'이 생기기 전, 쿠바 사람들은 모네다를 기준으로 시장이 돌아가고 월급을 주고 생활을 영위했다. 이 쿡이란 놈이 생기고부터는 혼란이 시작된다. 생각해보자. 의사 거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직종으로 사회주의 체제에서 모네다로 녹봉을 받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힘들지만 같이 힘든 세상이랄까.

 

쿡이 생기고부터는 외국인 관광객으로부터 돈을 버는 택시 기사들이 의사의 10배 넘는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 말해 뭐하는가 왜 쿠바가 택시판이고, 올드카 투어판이고, 모든 집이 까사를 열고 있겠는가. 쿡을 벌기 위해서다. 이제는 쿠바 사람들도 '적당히' 먹고 사려면 쿡이 필수다. 앞서 말했듯 쿡은 달러와 일대일의 가치를 지닌다. 이 말은 즉, 미국과 대립하고 원수지간이어도 쿡이 만들어진 순간부터 쿠바는 달러가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아바나에서는 식당도 종류가 나뉜다. 쿡을 취급하는 식당이 늘고 외국인 관광객 대상의 레스토랑이 증가한다. 쿡을 벌기 위해서다. 피자 한 판을 외국인 관광객에게 2쿡에 파는 게 현지인 대상으로 10모네다짜리 5번 파는 셈이다. 나 같아도 쿡을 버는 쪽을 택하겠다. 그러니 점차 모네다는 유명무실하고, 쿡을 다루는 쪽이 커진다.

 

한 달을 지내보니 식당들도 쿡만 받는 식당, 모네다와 쿡 모두 받는 식당, 모네다만 받는 식당으로 나뉘고 주요 타겟도 다르다. 누구는 모네다를 벌고 사용하며 생활하고, 누구는 그 25배 가치인 쿡을 벌고 사용하며 생활하는 것이다.

 

수입과 지출이 두 종류로 나뉘고 그에 따라 세계가 나뉜다. 쿠바에는 쿡의 세계와 모네다의 세계가 있고 그 사이를 바쁘게 오고 가는 쿠바 서민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