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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두번째 이야기, 친환경적인 아바나 올드카?

by cardo 2020. 3. 25.

형형색색의 컬러를 자랑하는 올드카는 아바나 여행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다. 분홍색, 형광색, 밝게 빛나는 하늘색 정말 다양하기도 하다. 관광지역에는 이런 올드카들이 더욱 눈에 띈다. 지나가면서 몰래 슬쩍 내부를 구경하니 다들 겉면만 올드카다. 핸들에는 도요타 마크가 있고, USB를 연결해서 노래를 튼다. 겉면만 올드카 그대로 두고 속은 전부 갈아끼운 듯 하다.

 

이런 무지개빛깔 관광객 전용 투어 택시들은 가짜 올드카다. 겉만 올드카지 속은 나름 신식으로 다 개조했다. 쿠바에는 정말 이게 굴러 다닐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만드는 진짜배기 올드카들도 많다. 배기음부터 차원을 달리하는데 분명 엔진에 사레가 걸렸거나, 죽은 지 오래된 엔진의 입에 흙이 턱턱 막혀 뱉어내는 듯한 소리가 난다. 다른 건 몰라도 쿠바에서는 차가 오는 지 모르고 부딪칠 일은 없을 듯 하다.

 

멕시코 시티의 차들도 꽤 시끄럽다고 느꼈는데 아바나에 와보니 멕시코 시티의 차들은 하이브리드 신형차 수준이다.

 

아바나의 차들은 사이드미러가 없거나 창문이 열리고 닫히질 않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비아술이라는 외국인 전용 시외버스는 전좌석의 안전벨트가 깔끔하게 잘려있다. 안전벨트 필수 착용이 아니라 필수 미착용 상태다.

 

그리고 온갖 개조를 감행한 차들도 많다. 겉면만 멀쩡하면(그냥 구실만 하더라도) 쿠바 기술자들은 살릴 수 있다. 아이폰 사설 수리업자와 묘하게 비슷하다. 카메라가 고장났으면 다른 부분이 고장난 아이폰의 카메라를 떼와 붙이는 꼴이다. 고장난 자동차 5대만 모여도 새 차 1대는 거뜬하다.

 

일반화를 싫어하지만 감히 말하자면 우리나라 차와 정말 반대다. 쿠바의 모든 차와 우리나라 모든 차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쿠바의 웬만한 차들은 우리나라에서는 폐차장으로 직행할 것들이다. 그럼에도 자동차가 필요한 쿠바 사람들은 힘겹게 죽은 차에 산소 마스크를 땜빵한다.

 

올드 아바나 거리를 걸으면 현지인들이 주로 지내는 지역이 나온다. 간혹 자동차를 고치는 청년들을 볼 수 있다. 나는 심지어 매트리스 스프링을 고치고 있는 사람들도 봤다. 푹 꺼진 매트리스 스트링을 하나하나하 다시 이어붙이고 스프링을 구부리고 있었다. 자동차도 다 무너져가는을 업어주는 꼴이다. 우리나라와는 정말 반대다. 공산품이 부족한 나라의 국민들은 가내수공업자로 거듭나고, 못 고치는게 없다. 고쳐야 먹고 산다.

 

요즘에도 아나바다 운동이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릴 때는 아나바다 운동이 한창이었는데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절약 운동이다. 절약 운동이지만 친환경적이라 생각한다. 

 

올드카의 매캐한 배기음을 소매로 막으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거 친환경차 아닌가? 새로운 자동차를 생산할 때 드는 자원과 발생되는 탄소 발자국 수치와 기존 자동차를 고쳐서 쓰는 절약성 친환경 운동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쿠바 학자들은 반드시 이 주제로 논문을 작성해야 한다. 전 세계에 충격을 가져다 주리라. 그냥 마후라에 필터만 하나 설치해도 되지 않을까.

 

거리에서 쿠바의 올드카들은 외친다. '우리가 돈이 없어 죽은 차를 살리는 줄 아느냐? 시끄럽다고 놀리지마라. 너희는 언제 아껴 쓰고, 다시 쓴 적이 있느냐? 이 자본주의의 노예들아.'

 

아바나의 땅은 시끄럽지만 그래도 하늘은 서울보다 훨씬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