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는 공산품이 부족하다. 공산품이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물품을 말하는 건데 현대 사회에서 필수품부터 사치품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상품이 공산품이다. 즉 쿠바에는 모든 종류의 물건들이 크고 작게 부족하다.
의류도 그중 하나다. 옷이 비싸고 귀하다고 한다. 그리고 비싸지 않더라도 품질이 조금 떨어지고 괜찮은 옷은 상당히 비싸다. 전 세계 어디든 볼 수 있는 자라(Zara), H&M은 없고 망고(Mango) 하나만 올드 아바나 센트럴에 있다. 예전의 자라였다고 하는데 외국인 관광객 전용이다.
우리나라 거리를 돌아다니면 옷가게를 꽁치 가시만큼 많다. 아무리 발라내도 계속 나오는 가시처럼 골목에 들어설 때마다 다른 옷가게가 하나씩은 보인다. 쿠바는 옷가게보다 관광 기념품 가게가 많이 보이고, 식료품점이 더 많다.
옷을 어디서 구매할 지는 나도 의문이다. 호텔 아바나 리브레 옆에 위치한 상점가를 가 봤는데 빈약하지만 푸마나 다른 옷가게들 몇을 보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훨씬 부족해 보인다. 확실히 옷가게가 별로 없고, 의류 제품이 귀하다.
그렇다고 쿠바인들이 옷을 못 입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바나 공항에 도착한 첫날 마주친 것은 공항 직원의 스타킹은 꽃무늬 망사 스타킹이었다. '뭐야 변태 아냐? 꽃무늬 망사 스타킹이랑 패션 센스랑 뭔 상관이야'라고 분명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고 해서 옷을 잘 입는다는 말은 아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공항 직원이 꽃무늬 망사 스타킹을 입는다는 의미는 뭔가 많은 걸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우린 사회주의 시스템에 있지만 이정도 개성은 선 볼 수 있다고!'라고 외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공항 직원이 망사 스타킹을 신을 수 있는 사회주의 국가는 몇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며칠 직접 아바나 거리를 돌아다니면 쿠바인들이 색을 기가 막히게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옷이 풍부하지 않으니 가진 옷의 색감으로 패션을 완성한다.
카리브해 지역 사람들답게 강렬한 원색을 톤온톤으로 맞추거나, 신발과 외투를 같은 색으로 깔맞춤하는 요술을 부린다. 빨간색 정장을 입고 빨간 모자를 쓴 신사도 봤다. 정말이다. 온통 빨간색이었는데 강렬한 햇살 아래 당당한 걸음걸이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검은색, 회색 등 무채색을 좋아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다들 컬러감이 넘친다. 올드카도 알록달록 크레파스 한 통을 한데 모아놓은 듯한 색의 향연을 자랑한다. 아바나에서는 사람도 자동차도 건물도 도시도 색감이 퐁퐁 터진다.
컬러 센스가 멋진 것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쿠바 사람들은 참 깨끗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간 지내며 쿠바 사람들에게서 냄새가 난 적이 잘 없다고 느꼈다. 땀도 많이 나는 날씨인데 정말 맡기 불편한 체취를 느낀 적이 드물다. 진짜다. 미국과 유럽에서 각 6개월을 지내본 경험자로서 비교해봤을 때 정말 냄새가 나지 않는 편이다.
사실 낡은 건물도 많고 쿠바인들의 옷가지들도 많이 낡아 보인다. 색도 바랬고, 신발에 구멍도 보인다. 한국과 비교하면 이미 버릴 옷들과 부술 건물들 투성이다.
대신 옷과 신발에는 구멍만 있지 얼룩은 없다. 이게 정말 중요하다. 쿠바인들의 물건들은 낡은 건 있어도 더러운 건 적었다. 분명 아니라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내가 한 달을 지내면서 청결면에서 불쾌한 적이 극히 드물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의 옷과 신발이 낡고 구멍 뚫려 있어도 항상 깨끗하게 세탁된 상태고 오래된 것들도 의외로 잘 쓰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이다. 찢어지거나 해져서 구멍이 생긴 옷은 용납해도 때가 묻은 옷은 허용하지 않는 것인가.
이쯤되면 쿠바인들의 세탁 비법을 알고 싶다. 옷에서 냄새나지 않으려고 좋은 유연제나 세제 혹은 세탁기를 사용할 사람들 같지는 않다.
올드 아바나의 아파트나 공동 주택을 지나다니면 빨래를 널어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건조기는 꿈도 못 꾸고, 실내에 빨래 건조대에 걸어두기에는 잘 마르지 않으니 밖에 걸어두는 것일 테다. 아직 쿠바는 빨래를 창문이나 테라스에 걸린 빨랫줄에 주렁주렁 매달아 넌다.
기다란 끈에 주렁주렁 매달려서 바람을 쐬고 있는 빨래를 보면 내가 다 시원하다. 세탁비누를 옷에 쓱쓱 바르고 팍팍 손으로 찰지게 두드리고 난 뒤 거품을 내어 세탁한다. 옷을 주물주물하다가 물에 헹궈 거품을 빼고 나서 꼭꼭 손으로 꽈배기처럼 꼬아 물기를 짜낸다. 그리고 손으로 빨래를 한번 탁 털고 난 뒤 집게로 집어 빨랫줄에 하나씩 건다. 카리브해의 강렬한 햇살을 받은 빨래가 바삭 마르면서 자외선으로 강력한 소독을 마친다. 쿠바 사람들은 그 햇살의 기운이 가득 담겨 있는 깨끗하고 따뜻한 옷을 입으며 하루를 시작하지 않을까.
세탁기를 사용하는 쿠바인들이 '21세기에 무슨 손세탁이야 누굴 바보로 아나? 멍청한 한국인 관광객 같으니라고'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순전히 멍청한 내 상상이다. 세탁기를 사용하는 쿠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쿠바에도 세탁기가 분명 있다. 우리가 아는 세탁기 제품들도 있지만 상상 밖의 제품들도 있다. 세탁기 이야기도 재밌겠다.
마지막으로 쿠바를 여행하는 동안 더러운 사람 때문에 불쾌한 경험이 있었다면 미안하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경험담이자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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