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여덟 번째 이야기, 한 달간 지냈던 아바나 아파트를 소개합니다

by cardo 2020. 4. 3.

내 기준으로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부동산 계약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집을 알아보고 부동산 계약을 직접 해봐야 세상살이 녹록지 않고, 부모님 집을 떠나 혼자 살면서 내 집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다. 반지하에 살아보고, 고시원에 살아본 사람은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원룸 자취방에서 지낸다고 한들 부모님 집보다 좋기는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집의 구조와 용도 그리고 설계에서 오는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흔한 자취방은 말그대로 1인이 생활 필수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4인 이상의 가족을 고려한 아파트나 주택과는 다르다. 자취방은 그래서 간혹 혼자 지내는 주거인을 우울하게 만들기도, 외로움에 사무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아바나 아파트 원룸을 빌렸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한 달 숙박 할인가로 예약을 했다. 1개월에 약 70만원이라는 꽤나 합리적인 가격에 빌렸는데 상태도 생각보다 좋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분리형 원룸이다. 현관문에서 들어서면 아주 작은 거실같은 공간이 있고 거기에 소파를 두고 맞은편 현관문 위에는 TV를 설치해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찾기 힘들 정도로 작은 크기의 화면인데 한 달을 지내보니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친구였다. 현관문을 기준으로 왼쪽으로 작은 부엌이 있다. 냉장고도 있고 가스레인지도 있다. 작은 싱크대도 물론 있다. 

 

그리고 부엌과 소파 사이 방문이 있고 그 안에 큰 방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일반 자취방보다 조금 더 큰 편이다. 그 방에는 화장실과 샤워기, 욕조가 있다. 안방과 화장실은 방문이 아닌 플라스틱 미닫이 커버가 설치되어 있다. 침대는 2개가 놓여 있는데 하나는 더블, 하나는 싱글이다. 3인 규모의 여행 그룹도 묵을 수 있도록 구비해둔 듯하다.

 

여기까지 아바나의 아파트 원룸을 설명하면 그냥 우리나라와 보통 원룸 자취방과 다를 바 없다. 큰 특징은 창문의 여부다. 테라스도 아니고 창문. 여기 방에는 창문이 없다. 단, 하나 창문의 역할을 그나마 하는 놈이 있는데 그것마저도 매우 작은 크기로 건물 안쪽을 향해 나있다. 

 

이 낡고 오래된 거대한 아파트는 ㅁ자 형태로 지어졌다. ㅁ안에 공간은 매우 작은 공간이고 의미가 없다. 그리고 모든 내측 방들은 이 ㅁ자를 바라보고 쪽창이 달려있다. 애초에 환기를 하고, 햇살을 쬐기 어려운 구조다.

 

덕분에 나는 아침인지 밤인지 모르고 지냈다. 공기도 거의 반지하와 다를 바 없을 정도의 축축하고 차가웠다. 개인적으로 한 달이라는 기간은 충분히 머물 만큼 괜찮은 곳이었지만 쭈욱 살기에는 망설여지는 걸림돌이 있었는데 이 건축물의 형태다. 햇살을 받지 못한다. ㅁ 안에 햇살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다. 해가 딱 이 위로 뜰 때만 가능하다. 그 시간은 정오를 조금 지나서 인 듯했다.

 

답답하고 더울 줄 알았는데 에어컨도 있고, 오래된 콘크리트 건물 특유의 서늘함이 있어 더위에 시달리지는 않았지만 감옥을 연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파트 외관은 낡았다. 어느 정도냐면... 한국의 재건축을 기다리는 버려진 아파트보다 조금 더 낡은 느낌이다. 출입문을 열면 일자형 복도가 있고 그사이를 두고 방들이 마주 보고 있다. 한 층에 열 개씩 되는 것 같은데, 방 내부는 부족한 사회주의적 상상력으로 미루어보아 아마 모든 형태가 동일할 듯하다. 

 

복도도 어둡다. 햇살이 들지 않는다. 각진 콘크리트 건물이라 르 코르뷔지에를 떠올렸는데, 그에게 실례다. 각진 큰 창도 없고 필로티도 없다. 오직 네모난 박스 안에 햇살과 환기는 고려하지 않은 채 방만 숭숭 뚫어놨다.

 

조명도 낡고 어두워 마치 감옥 같다. 침대 매트리스도 스프링이 다 꺼져 있어 푹 들어갔고 허리도 아팠다. 너무 안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것 같다. 이런 감옥을 연상하는 아파트도 인간은 지낼 수 있고 나름의 추억과 패턴도 쌓았다.

 

이 원룸에서 나는 꼬박 한 달을 지냈다. 음식을 요리했고, TV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잠을 잤고 샤워도 했다. 볼일도 보고 민망한 소리와 냄새는 플라스틱 미닫이 커버로 샜다. 촛불을 켰고, 탈취제를 공기 중에 뿌렸다. 아침에는 쿠바 원두로 커피를 내려 마셨다. 주인은 매주 2회 청소해주었고, 그동안 나는 밖에 나가 있었다. TV에서는 유럽 축구리그와 미국 농구 리그를 방영했고, 나는 멍하니 올려다보며 휴식을 취했다. 냉장고는 튼튼했고, 가스레인지도 성냥이나 라이터만 있다면 쓸만했다. 무엇보다 요란한 에어컨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 친구가 없으면 난 고통스러우니 미워만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