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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아홉 번째 이야기, 사회주의 국가에서 프로 스포츠 경기를 본다는 것

by cardo 2020. 4. 10.

NBA를 좋아하는 분들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프로 농구 경기를 즐겨 보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즐겨했고 고등학생 때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에 빠져 있었다. 아스날 팬인데 당시 베르감프 선수의 귀신같은 트래핑을 잊지 못한다. 어쨌거나 키는 크면서 농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뭐랄까 손으로 하는 구기 종목은 끌리지 않았다. 컨트롤하기 힘든 발로 하는 공놀이가 더 스릴 있다고 생각했다.

 

2년 전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꾸준히 레슨을 받고 있다. 멕시코 쿠바 여행에 혹시 몰라 테니스 코트를 빌린다면 꼭 한 게임 쳐보리라 테니스 라켓도 챙겨갈 정도의 열정을 지녔다. 요즘은 주로 테니스 경기 하이라이트를 주로 챙겨 본다.

 

그런데 미국 프로 농구리그 NBA에 잠깐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는데 쿠바 아바나에서 한 달 지낼 때다.

 

아바나에는 집 안에서 즐길거리가 그렇게 많지 않다. 저녁을 먹고 거리로 나가면 남녀노소 누구나 밖에 나와 있다. 어린아이들은 공을 이리저리 차고 골목에서 놀고 있고, 남정네들은 삼삼오오 모여 맥주나 럼주를 마시며 담배를 피고 잡담을 한다. 여자들도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다. 

 

쿠바의 길거리는 항상 작은 무리들로 북적인다. 늦은 저녁에는 말레꽁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데 관광객이 많아서가 아니라 현지인들이 우후죽순 나와서 그런 것이다. 매일 보는 말레꽁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집 안에서 할 게 많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TV 프로그램이 낙후되었고 인터넷이 안된다는 점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와이파이와 인터넷 연결이 안되니 집에서 할게 뭐가 있겠는가. 놀이도 밖에서 나와하는 게 제맛이다. 그러니 다들 밖으로 나와 떠들든, 공을 차든, 와이파이 공원에서 스마트폰을 만지든 밖에 나와야 한다.

 

모기도 많고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숙소 안에서 책을 읽었다. 작은 거실 위에 비치된 네모난 박스의 TV가 제 역할을 할지 애초에 믿지 않았다. 첫날에 틀어봤는데 스페인어로 떠들 뿐 각종 방송이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아서 얼마 안 되어 꺼버렸다.

 

저녁을 먹으면서 볼 다운 받았던 넷플릭스 콘텐츠도 떨어지고 할 게 없었다. TV를 켜니 농구가 나왔는데 미국 프로 농구 경기였다. 선수진들과 게임을 보니 꽤 최근이다. 하루 이틀 전 경기를 틀어준다. 

 

밥 먹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보는데 여간 재밌는게 아니다. 이때 그 유명한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경기를 보게 되었고, 마이애미 히트, 밀워키 벅스 등 여러 팀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선수는 '카이리 어빙'인데 키 큰 선수들 사이에서 요리조리 빠른 드리블로 돌파하며 레이업 슛을 하는데 현란한 스텝과 드리블이 볼만했다. 마치 축구의 메시 같았다. 

 

점점 농구 보는 재미도 늘고 이제 매일 저녁 쿠바의 스포츠 채널에서 방영하는 미국 프로 농구나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를 챙겨봤다. 그렇다. 미국 프로 농구뿐만 아니라 야구, 영국과 스페인, 독일의 프로 축구 등 이 시대 유명한 프로 리그는 다 방영했다. 예상외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프로 스포츠 경기를 보여주다니.

 

알고 나면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다음부터 길거리를 걷고 테라스가 있는 바나 펍을 볼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음료를 마시며 프로 축구 특히 유럽 챔피언스리그를 열심히 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와이파이 연결을 위해 어느 호텔 1층 로비에 갔는데 손흥민이 맨체스터 시티 상대로 골을 넣는 장면도 라이브로 볼 수 있었다.

 

일요일 밤 TV를 켜니 뉴스가 방영되었다. 뉴스에서는 축구선수를 꿈꾸는 어린 소년들을 다뤘다. 잔디 한 포기도 찾기 힘든 딱딱한 흙 운동자에서 열심히 뛴다. 전문적인 육성 프로그램이나 코치도 없이 어설프게 훈련하고 연습한다. 선수를 꿈꾸는 청소년들이지만 우리나라의 슛돌이와 비교해 봐도 열악하다. 해맑게 웃으며 스페인어로 인터뷰를 하는데, 비록 환경은 어렵지만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훈련하고 실력을 늘리고 있다는 말 같다. 잘 몰라도 저 미소와 씩씩한 대답만으로 충분히 느껴졌다.

 

오래전 쿠바는 유명한 야구 선수들을 배출하기로 유명했다. 많은 어린이들이 야구선수로 성공하여 미국 프로야구팀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고 그게 그들의 아메리카 드림이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도 야구 이야기가 간간히 나온다.  하지만 최근 들어 쿠바의 야구 수준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고 낙후화 되면서 타고난 신체능력만으로 프로가 될 수 없는 세상이 되었고, 야구의 인기도 덩달아 시들해졌다.

 

사회주의 국가의 어린이들도 어릴 적 나만큼 프로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고, 유명 선수들을 동경한다. 그중 직접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