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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열 번째 이야기, 손 꼭 잡고 어두운 트리니다드 밤길 걷기

by cardo 2020. 4. 10.

쿠바 여행을 한 달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저녁을 먹고 쑤와 어두운 트리니다드 길거리를 걸으며 5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던 추억이다. 

 

한국인 여행객에게 유난히 유명한 트리니다드의 차메로네차메로네 까사에는 머물렀던 지난 여행객들의 방명록이 있다. 거기에는 직접 수기로 적은 여러 정보들이 있다. 차메로네에서 가까운 곳에 1 모네다(거의 50원) 짜리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이스크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가 떼를 써 같이 갔다. 나왔는데 웬걸 해가 저물자마자 마을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것이다. 거리에 가로등이 부족하고, 간판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없으니 주택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조명만이 길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면서 계속해서 걸어 내려갔고, 불 다 꺼진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았다. 이 가게를 찾아가는 길이 나에게는 그렇게 로맨틱했다. 쑤가 귀찮지만 함께 가준 것도 고맙고, 50원짜리 아이스크림 먹겠다고 길을 나선 우리도 약간은 웃기고, 조명이 부족해 어두운 길거리가 낯설어 서로 꼭 붙어 가던 간질 했던 촉감도 좋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 추억들은 이런 것들이다. 아바나에서 공원을 찾아간다고 모르는 길을 깊숙이 들어갔다가 의도치 않게 먼 길을 빙 둘러서 돌아온 적이 있다.(내가 고집부려 쑤 말을 듣지 않고 찾아나섰다가 일어난 일이다) 인적도 드문 거친 길을 지나, 주택가 언덕을 만났을 때 쑤는 짜증을 냈고 나는 그런 쑤를 업어주었다. 쑤를 업고 언덕을 올라갔던 그 일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다. 

 

힘들어서 업어주다가 내가 더 힘들었던 것도 웃기고, 마냥 걷기 지겨우니 노래 틀어서 따라 부르며 걷는게 흥겨웠고, 괜히 가위바위보 하거나 끝말잇기 하며 지루함을 달랬던 싱거움도 귀여웠다.

 

쿠바 여행에서는 유난히 걷고 걸었다. 대중교통은 시원찮고, 교통수단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비싸거나 정보의 불친절함 때문에 찾기 어려워 헤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땡볕에 많이 걸어서 그런지 서로 예민하게 굴고 많이 싸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유도 생각나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 싸움들이었다. 그럼에도 난 함께 많이 걸었던 추억들이 소중하다. 아바나에서도, 쿠바에서도 함께 걸을 동반자가 있어 든든했고, 걷는 속도에 맞춰 아무렇지 않았던 순간들이 내 머릿속에 천천히 각인되었다. 긴 여정을 함께 걸으며 그 적적한 시간을 함께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