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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열한 번째 이야기, 내가 본 쿠바 일꾼들

by cardo 2020. 4. 13.

내가 방문했을 때 쿠바 국립 미술관은 내부 보수 중이었다. 전시 관람은 가능하나 전시회 외부 어느 계단에서는 내부 보수가 한창이었다. 언제부터 시작했고, 언제까지 진행하는지는 가늠이 가지 않았다. 아마 미술관이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보수하고 있지 않을까.

 

다른 층으로 내려가기 위해서 계단으로 가는 높은 비계 위에 매달려 천장 보수가 한창인 두 노동자를 보았다. 아니 그중 한 명을 보았다. 다른 한 명은 꾸벅꾸벅 세상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졸고 있었다. 연장도 들고 그냥 기대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전날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마작을 즐겼는지 아니면 술을 거하게 마셨는지 모르겠다만 높은 비계 위에서 졸고 있으니 보는 내가 가슴 졸였다.

 

다른 한 명, 일을 하고 있는 일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졸고 있는지, 잠에 들었는지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데 일정한 페이스에 맞춰 천천히 그리고 규칙적으로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나같으면 약 오를 만도 한데, 나도 일 안 하고 싶을 만도 한데 일을 안 하지는 않고 계속 묵묵히 칠한다. 근데 어째 페인트 색이 기존 벽 색깔과 약간 다른 톤이다. 아니다. 신경 쓰지 말자.

 

평화롭게 졸고 있는 일꾼에게 다시 눈길이 갔다. 페인트 붓을 손에 든 채 비계에 걸터앉아 졸고 있다. 저 분 혼자만 따뜻한 봄날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평화롭게 졸고 있는 나그네만 같았다. 공사 현장에서 마음 편하게 졸고 있는 것만으로도 여기는 빡빡하진 않은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상은 잘 모르겠지만.

 

한 달간 여러 음식점을 방문했다. 유명한 고급 레스토랑부터 완전 현지식 식당까지 다양하게 갔는데 쿠바 직원들의 서비스는 전부 달랐다. 우리나라나 미국처럼 서비스에 평준화가 있는 게 아니라 온도 차이가 극명했다. 목욕탕으로 따지면 온탕보다는 냉탕과 열탕 사이만 있는 정도랄까.

 

해외 관광객 상대로 하는 유명 맛집이나 레스토랑들은 서비스가 좋은 편이었다. 젊은 직원들이 능숙하게 서빙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준 곳도 있었다. 많은 캐나다, 미국 관광객들이 팁을 후하게 주는지 자본주의 서비스를 톡톡히 누릴 수 있었다. 올드 아바나가 아닌 현지인 상대로 하는 비교적 저렴한 현지 식당을 그냥 무난했다.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았다. 그냥 음식 주문하고 음식 서빙받고 먹고 나갔다. 

 

가장 독특한 곳은 애매한 음식점이다. 유명 맛집은 아니나 관광객 상대로 오픈한 식당들, 어설프게 구색을 갖추고 있는 식당들인데 호객 행위는 많이 하는데, 서비스는 그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일단 고객이 되는 순간 방치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신경을 안 쓰는데 뭐 나쁘지는 않다. 마음은 편한데, 뭔가  부탁하려면 좀 기다려야 한다. 한참을 불러야 반응한다.

 

비아술 터미널에서도 느꼈다. 플라야 히론에서 티켓을 예매해야 해서 비아술 터미널 사무실을 방문했다. 사무실이라고 해봤자 작은 사무실 단지 안에 더 작은 사각형의 조그만 공간에 책상과 전화기만 있는 수준이다. 여자 직원분 한 명 혼자 앉아있는데 영어는 능숙했다.

 

가서 내일 티켓을 예매할 수 있을지 물어보니 내일 되어야 안다고 내일 오라고 답했다. 인사말이나 추가 설명은 없다. 'Come tomorrow'하고 이야기하더니 책을 읽는다. 난 답답하다고. '내일 오면 표가 있는 거 맞아? 네가 어떻게 예약해주는 거야? 도대체 이거 뭐야!?'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꾹 삼키고는 '내일 오면 표가 있을까?'하고 최대한 웃으며 비굴하게 말했다. 그렇다. 난 비굴했다. 표가 필요하니까. 여긴 손님이 왕이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 노동자가 왕이다.

 

"몰라, 내일 와." 정말 이렇게 답했다. 단 두 마디. 그래서 난 내일 언제 여는지 물어봤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방문했다. 아침 일찍 미리 도착해서 사무실 오픈을 기다렸다. 원래 9시인데 10시가 다되어 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씩씩하게 걸으며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날 무심하게 쳐다보더니 X자 배너와 테이블을 옮겨달라고 했다. 난 다른 한국인 남성 여행객과 함께 옮겼다. 

 

그리고 책상에 앉더니 나한테 "아바나 투 티켓?"이라고 묻는다. 그렇다고 답했다. 혹시 몰라 손가락 두 개를 활짝 펼치며 수량도 확실히 표현했다. 전화기를 두드리더니 스페인어로 잠깐 뭐라 말한다. 그러더니 연필로 종이에 끄적이더니 다 되었으니 가보란다. 난 이게 끝이냐고 물으니, "끝이야. 다음 사람?"이라고 답했다. 허무하면서도 뭔가 당황스러웠다.

 

쿠바에서 지낼 때는 몰랐는데 멕시코로 다시 돌아오니 온도차를 느꼈다. 냉탕에 있다가 열탕으로 들어가면 온 몸이 저릿저릿 전기 통하는 느낌 같은걸 받았다. 

 

일단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인사말을 건넨다. 쿠바에서는 '올라~'도 듣기 어렵다. 정말이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세요, 좋은 오후입니다'같은 기본적인 인사말을 듣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가 친절하게 스페인어 인사말을 건네면 짧게 쑥쓰럽지만 툭 던지듯이 '부에노..'라고 얼버무린다. 쿠바 직원들은 인사말에 박하다. 

 

멕시코 직원들은 대체로 아니였다. '부에노스 디아스'를 입에 달고 살고, 눈을 마주치면 연신 방긋 웃는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인가. 내가 너한테 왜 웃음 따위를, 그리고 인사말을 건네야 하냐? 쿠바에서 넌 음식을 원해서 이 식당에 온 것이고 난 그 음식을 서빙한다. 그러면 끝.이라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모든 음식점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대체로 내가 갔던 식당들의 분위기를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막상 쿠바에 가서 '잘 모르겠는데?', '사람들 친절하던데?'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친절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서비스 정신은 우리랑 뭔가 다른 것 같아'이다. 뭔가 다르다. 굳이 열심히 웃지 않는다. 굳이 열심히 뭔가(팁을) 더 바래서 움직이지 않는다. 사회주의 특유의 무료함과 딱딱함 그리고 해야 할 것만 딱 하고 싶어 하는 그런 권태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알면 친절하고 좋은 쿠바인들도 많다. 내가 만난 까사 주인들은 전부 친절했다. 사장과 직원, 즉 자본가와 노동자의 마인드 차이인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