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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열세 번째 이야기, 쿠바에서 아이폰을 잃어버리다

by cardo 2020. 4. 17.

때는 화창한 봄 날씨의 어느 하루였다. 날씨도 좋고, 공기도 맑고, 시간도 많은 날이었다. 2층 버스 투어 중 우연히 발견한 강가의 공원을 보았고 꼭 한 번 피크닉 가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마침 그 날이었다.

 

구아구아를 성공적으로 타고 어린이 공원에서 구경하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물론 벤치는 방치된 지 오래되어 찐득해서 물티슈로 닦았다.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 뒤 산책을 나섰다. 멀리 서는 공원으로 보였으나 깔끔하게 정비되기보다는 공원을 만들다 만 숲과 가까웠다. 그래도 강은 흐르고 공기는 색이 보이지 않았지만 푸르게 보였다.

 

거친 산책로도 우리를 막지 못했다. 다만 무슨 일이 기다릴지는 전혀 몰랐다.

 

산책을 좋아하는 내가 계속해서 걸어갔다. 길이 잘 뚫려있지 않아 결국 멀고 먼 거리를 걸어 다리를 건너야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쑤는 조금 투정을 부렸다. 그래도 난 그 시간마저 좋았고 행복했다.

 

열심히 걷고 걸어 돌아왔다. 배도 출출하고 목이 말라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쿠바의 슈퍼는 가방을 지니고 들어갈 수 없어서 맡겨야 한다. 맡길 때 돈을 내야 하거나 오히려 맡기기 걱정스러워 2인조인 우리는 보통 한 명이 들어가고 한명이 짐을 맡고 밖에서 기다린다. 

 

나는 밖에서 기다리며 사람들 구경을 하고, 쑤가 들어가 과자와 음료수를 사 왔다. 쑤는 무슨 일이 있었던지 헐레벌떡 뛰어 왔다.

 

"와, 나 진짜 큰일날 뻔했잖아. 결제하려는데 막 모네다 내버려서 놀래 가지고 쿡으로 다시 꺼내고 얼마나 정신없었는지 몰라."라고 웃으며 말했다.

 

오래 기다리느라 지친 나는 별말 없이 "그래? 고생했어. 우리 이제 어디 앉아서 과자도 먹고 좀 쉬자"라고 말했다.

 

다리 아래 벤치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걸어가다 쑤가 외쳤다. 

 

"나 휴대폰, 내 아이폰 없어졌어!"

 

"잘 찾아봐!"하고 뒤져봤으나 쑤의 노란색 반바지는 아이폰을 숨길 주머니가 없었고 마트에 두고 온 걸 기억했다. 다시 쑤는 좌절 하며 달려갔다. 가스 밸브 잠그는 걸 깜박하고 나온 사람처럼.

 

아이폰은 없었다. 마트에서 결제하느라 정신 없을 때 쑤는 계산대 위에 폰을 올려두고 지갑을 뒤져 지폐를 찾아 결제했고 지갑과 잔돈은 잘 챙겼으나 아이폰은 챙기지 않았다. 

 

한참을 서 있었다. 쑤와 나는 불편한 스페인어로 발을 동동 구르며 직원에게 상황을 열심히 설명했으나 고개만 절레절레한다. 들어가서 뒤져보니 이미 없고, 직원도 아마 누가 가져간 듯한데 누군지 보지 못했다고 했다.

 

입구에 서서 경찰에 전화해보려고 했으나 방법을 몰랐고 막막하던 참에 젊은 사람들 여럿 지나갔다. 왠지 영어를 할 줄 알 것 같아 붙잡고 자초지종 설명하니 유창한 영어로 알겠다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대신 전화를 걸어주고 상황을 이야기해주고 마트에서도 도와줬다.

 

도와준 청년은 와이파이 카드를 사용한 적 있는지, 해당 휴대폰의 IMEI를 아는지 물어봤다. 쿠바에서 와이파이 카드를 이용하면 정부가 모든 이용자의 위치와 기록을 추적할 수 있다고 한다. (놀랍지만 사실이다) 이때 IMEI를 알고 있으면 이를 조회해서 찾을 수 있다.

 

쿠바에 오기 전 쑤가 IMEI라는 것을 알고 조회해본 경험이 있다. 나에게 보여주기까지 했었다. 혹시나 우리 비트윈이나 카톡 기록에 보낸 적이 있을까 찾기 위해 나는 인근 와이파이 공원으로 뛰어가서 조회해봤지만 없었다.

 

고마운 쿠바 청년과 친구들은 경찰을 불러주고 떠나고 우리는 경찰을 기다렸다. 20분 넘게 기다리니 경찰이 도착했다. 시원하게 차를 몰고 한 명은 먼저 내리고 한 명은 주차를 마저 한다. 우리는 이제는 조금 나아진 스페인어로 열심히 설명했다. 언어도 피아노 연주처럼 반복하면 나아진다.

 

CCTV를 조회해봤으나 유명무실, 직원들에게 진술을 받아 진술서를 작성하고 함께 경찰차를 타고 경찰서로 갔다. 한편으로 쑤의 아이폰을 잃고 대신 쿠바 경찰과 함께 경찰차를 타보는 경험을 해보니 눈치 없이 신났다. 한국에서도 타본 경찰차를 쿠바에서 타 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경찰서는 차로 10분 거리에 있었고, 꽤 여유로워 보이는 동네에 위치했다.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더니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40분 정도 기다리니 우리를 불렀다. 어느 집무실에 들어가 중년의 경찰관이 질문을 했다. 거의 조선시대 서양 함선에 붙잡힌 조선 농민처럼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니 다른 경찰관을 불렀다. 그리고는 또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주변에 뭐가 있는지 맵스미로 찾아봤다. 바로 옆에 한국의 집이 있었다. 신기했다. 도와줄 누군가가 있을지 얼른 뛰어서 가봤다. 물론 내가 뛰었다. 이제 한국의 집은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지 보이지 않았고 맵스미가 알려준 위치에는 일반 가정집으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

 

돌아와서 조금 더 기다리니 경찰관이 또 따라오라고 한다. 경찰차를 또 다시 얻어 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따라갔다. 호텔로 들어갔다. 꽤 큰 호텔이었는데 한산했다. 알고 보니 영어를 구사하는 호텔 로비 직원의 도움을 받아 진술서를 받아 적었다. 호텔 직원에게 통역을 맡긴 셈이다. 호텔 직원은 쿠바 직원답게 불친절과 무료함 사이 어딘가에 있을 서비스 정신으로 응대했다. 우리는 영어로 속사포처럼 열심히 설명했고 통역을 담당한 쿠바 직원은 아주 간결한 스페인어로 전달했다. 핵심만 추린 것인지 자기 맘대로 말한 건지 우리는 모르지만 다른 믿을 구석도 없었다.

 

호텔 직원은 딱 한번 감정 표현을 한 적이 있는데 아이폰 가격을 듣고 나서의 반응이었다. 잃어버린 물건의 가치가 얼마인지 적어야 했다. "너가 잃어버린 휴대폰 얼마였니?" "음... 구매가로 답해야 하나?"하고 나한테 묻더니 쑤는 "900 쿡 정도!"이라고 답했다. 1 쿡은 1달러, 당시 아이폰은 900달러 즉 한화 100만 원 조금 넘었다. 그때 호텔 직원이 입을 동그랗게 벌리더니 "오, 마이 가..."이라고 작게 말했다. 그리고 한번 더 확인하더니 경찰관에게 통역해줬다. 경찰관도 똑같은 모양의 입을 만들더니 놀랬다.

 

쿠바 물가와 경제를 생각했을 때 굉장한 가격인 것은 틀림없다. 한국에서도 최신 아이폰은 비싸다. 대신 쿠바에는 없는 것이 우리에게는 있다. 2년, 3년의 약정과 할부금 제도이다. 역시 우수한 자본주의다. 비싼 건 일단 살 수 있게는 만들어준다. 

 

진술서 작성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경찰서로 돌아왔다. 경찰차를 세 번이나 탔다. 다시 30분을 기다렸다.

 

이제 마쳤으니 집으로 가라고 한다. 다음주에 올 수 있냐고 묻는다. 간신히 띄엄띄엄 스페인어를 알아 들었다. 다음 주는 우리가 트리니다드를 가야 하고 그다음 주 월요일 즉 2주 후에 올 수 있다고 했다. 알겠다고 하면서 누구를 찾으라고 했다. 알아듣지 못하니 글로 써주고 종이를 찢어준다.

 

허탈한 표정과 기운 빠진 채로 나갈 채비를 하니 이 모든 상황을 담당했던 여자 경찰관이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호텔 베다도로 가야하는데 휴대폰을 잃어버린 마트로 돌아가 버스정류장에서 구아구아를 타야 한다고 답했다. 태워준다더니 기다리라고 했다. 10분을 더 기다렸다.

 

경찰차를 타고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우리는 손을 흔들고 고맙다고 했고 경찰관은 미소 지으며 '아디오스'라고 답했다.

 

여기 경찰서는 트리니다드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또 방문하는데, 그때는 더욱 커다란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