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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열두 번째 이야기, 돈키호테의 나라

by cardo 2020. 4. 16.

아바나에는 유명인들의 이름을 딴 공원들이 있다. 존 레넌 공원, 돈키호테 공원 등등 특히 문학과 예술 관련된 인물들이 많다. 존 레넌 공원과 돈키호테 공원 둘 다 방문해봤다. 존 레넌이 그곳에서 평화를 노래하고, 돈키호테가 쿠바 아바나의 독립 전쟁 영웅이라던가 그런 에피소드는 전혀 없다.

 

그냥 '이 공원은 돈키호테 공원입니다'하고 명명하고 그게 끝이다. 찾아보고, 현지인한테 물어봤는데 현지인은 어깨 으쓱할 뿐이고 정보는 전문성이 떨어졌다. 혹시 정확한 배경을 아시는 분은 알려주길 바란다.

 

찰리 채플린도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건 어찌어찌 끼워 맞춘 배경 이야기를 들었다.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스라는 영화를 통해 산업화 사회와 노동자의 생활 등을 풍자했다. 사회주의 기본 이념인 '노동자'를 다룬 이야기다. 마침 가치관도 맞겠다 싶어 한창 틀었다고 한다. 어차피 비싸고 자본주의의 최신 미국 영화는 틀지 못하니까. 그래서 찰리 채플린이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이것도 정확하지 않다. 한마디로 설화다.

 

베다도 지역을 둘러보는 날 마침 돈키호테 공원이 근처에 있길래 방문했다. 작은 공원에 몇몇 현지인들이 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다. 노숙자인지 모르겠다. 작은 돈키호테 동상이 서있는데 당나귀를 타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볼품없었다. 딱 돈키호테 같았다.

 

쿠바에서 돈키호테 공원에 있자니 새삼 느낌이 새로웠다. 사실 지금의 쿠바는 돈키호테가 세운 나라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쿠바 역사 관련 다큐멘터리 '쿠바 리브레 스토리'를 통해 쿠바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는 '돈키호테 인간' 유형에 속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체 게바라를 중심으로 낭만적이고 이 시대의 혁명가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사실 그는 전투에서 단 한번도 이긴 적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 남부 농장 지주의 서자로 태어나 아바나에서 변호사로 활동한다. 학생 시절, 변호사 시절 여러 번 쿠바 정부를 비판하고 혁명을 시도했으나 볼품없이 실패하고 강제로 멕시코로 끌려간다. 그래도 혁명의 의지는 불타오르는데. 멕시코에서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아 몰래 쿠바로 다시 넘어간다. 쿠바에서 전투 한 번 없이 잠입하여 게릴라전을 펼치는데 이렇다 할 전투는 여전히 없었다. 

 

든든한 동지 체 게바라가 똑똑한 언론 플레이를 통해 열심히 선전한다. 농민과 국민들의 편임을 전파하고 산 속에 숨어 자기편을 늘린다. 당시 쿠바 정부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고, 군대 규율도 바로 잡혀 있지 않았다. 혁명파의 선전에 속아 지레 겁먹고 도망가거나 흐지부지되기 십상이었고, 시엔푸에고스는 아바나로 진격하지만 무혈입성한다.

 

전투가 없었다고 놀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쿠바를 사회주의 국가로 재건하고, 미국을 물리치고 자립하는 것이 꿈이던 낭만가 피델 카스트로는 좌충우돌 돈키호테형 인물임은 틀림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시도할 때마다 실패했다. 젊을 때부터 시도했던 국가 전복은 형편없이 실패했으나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시도한다.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놈이 승자라고 했던가. 결국 피델 카스트로는 미국 CIA의 수많은 암살 시도도 운으로 모두 피해버린다.

 

내가 피델 카스트로라도 소설 속 인물 중 돈키호테를 가장 좋아할 것 같다. 가장 낭만적이고, 남이 봤을 때는 바보같지만 우직하게 한 길을 돌파하는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는 그런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