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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열네 번째 이야기, 오들오들 떠는 비아술 버스

by cardo 2020. 4. 21.

휴대폰을 잃어버린 쑤와 나는 애증의 아바나를 뒤로 하고 트리니다드로 떠났다. 쿠바에서 국내 도시 간 교통은 보통 비아술이라는 시외 고속버스를 이용한다. 산타 클라라처럼 양 극단에 위치한 거리는 종종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객도 있는 듯했지만 우리는 트리니다드까지만 갈 거니까 비아술을 이용했다.

 

쿠바에서 시외 고속버스 이용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티켓 예매도 가능했고, 터미널에서 시간 맞춰 버스를 출발하는 것 까지 동일하다. 나는 한국에서 미리 일정을 맞췄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버스 티켓을 미리 예매해서 프린트해뒀고 문제 없었다.

 

비아술 버스를 타자마자 당황한 것이 하나 있다. 안전벨트가 없다. 내가 상상하는 시외 고속버스라는 개념에 속하는 퀄리티였으나 안전벨트가 깔끔하게 잘려있었다. '이런 거추장스러운 것 따위 깔끔하게 없애버려'라는 마음가짐이 느껴진다. 쿠바에서는 당연히 안전벨트 착용이 필수가 아니다. 수많은 아바나 자동차들에서도 안전벨트를 볼 수 없으니.

 

넌 얼마나 안전벨트 착용 잘한다고 유난 떠니? 학창 시절 수학여행 떠날 때 꼭꼭 안전벨트 착용하나 보다?라고 따진다면 할 말 없다. 최근 버스 탈 때도, 택시 탈 때도 귀찮아서 안전벨트를 몇 번 안 한 적이 있거나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물론!

 

하지만 사람 심리가 그렇지 않은가? 하라고 하면 하기 싫은데, 하지 말라고 하면 꼭 하고 싶은 그런 거.

 

비아술 버스의 안전벨트의 깔끔하게 잘려진 단면을 보니 괜히 불안했다. 쿠바 도로 상황이나 버스 안전성에서나 한국보다 불안한데 안전벨트까지 없다니 걱정되었다. (막상 타보니 도로 안전성 면에서는 한국보다 낫다. 주행감은 정말 별로나 도시간 이동하는 차가 얼마 없기 때문에 휑하다)

 

버스 기사가 탑승 인원을 확인하고 시동을 걸었다. 에어컨이 나오기 시작했다. 버스는 출발했고 에어컨의 바람은 세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 비아술 버스에서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서 춥다는 사실을! 그래서 얇은 바람막이 외투를 챙겼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안전벨트는 차지 않은 채 오들오들 떨며 쑤와 딱 붙어서 갔다. 자갈 가득한 비포장 도로에 진입할 때면 버스가 마구 떨리고 우리도 달달 떨며 서로 붙잡고 있었다. 안전벨트가 없어 팔걸이를 조용히 꼭 잡았다. 인간은 적응과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처음 탑승할 때 온몸을 휘감은 불안감은 어디 가고 나는 입을 벌리고 졸고 자고, 버스의 진동과 함께 차량 인형처럼 고개를 흔들며 잠에 들었다. 어느새 버스의 진동이 아기를 재우는 어머니의 손 두드림 같았다.

 

적응하고 보니 비아술 버스의 귀여운 구석도 보였다. 기사가 2명 타는데 한 명씩 번갈아 가며 운전하는 듯했다. 한창 가는 길에 어느 집 앞에 서더니 버스 기사가 막 소리 질러 누굴 부른다. 어느 아주머니가 챙겨 나오더니 건넨다. 그리고는 몇 마디 나누더니 출발. 기사 식당이 아닌 기사 도시락 전문집 같았다. 이렇게 버스가 오고 가며 도시락을 받아가는 것 같다.

 

"오늘 날씨 좋군요!" 

"이번에는 고기를 좀 두둑이 넣어봤어요. 갓 구운 치킨을 넣었답니다."

"오, 세뇨리따 너무 기대됩니다."

"오늘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 보이네요?"

"네, 이번에는 아시아인 커플도 탔답니다. 처음에 긴장하더니 이내 곯아떨어졌지요."

"역시 기사님의 운전 실력은 쿠바 최고네요! 호호"

"이 버스는 거친 놈이지만 다루기에 따라서 아주 어머니의 품 안 같이 부드러울 수 있지요."

"(오는 놈마다 자기 운전 실력을 자랑한단 말이야) 그럼 도시락 맛있게 드세요! 아디오스!"

"좋은 하루 되십쇼!"

 

라고 상상해봤다. 쿠바인들이 이 정도 정감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내 나름의 외국인 필터를 씌어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다시 잠에 빠져든다. 트리니다드에 도착할 때까지 난 팔걸이를 꼭 잡고, 쑤와 딱 붙어서 서로 기대어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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