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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열여섯 번째 이야기, 더할 나위 없는 평화로운 플라야 델 히론

by cardo 2020. 4. 21.

트리니다드에서 3박 4일을 지내고 플라야 델 히론으로 넘어갔다. 물론 그 비아술 버스를 타고 갔다. 이번에는 훨씬 짧은 거리라 더욱 마음 편하게 갔으나 캐리어를 옮겨주던 일꾼이 팁으로 1 쿡을 당당하게 요구해 당황한 것만 빼고는.

 

플라야 델 히론은 트리니다드보다 훠얼씬 더 작은 동네다. 도시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한 읍보다도 작다. '리'정도의 개념이 맞으려나? 플라야 델 히론은 'T'자형으로 생겼다. T자의 일자 아래에는 바다가 있고, 호텔이 있고, 버스 터미널이 있다. 위로 쭉 올라가면 양갈래 길이 나오고 그 양갈래 사이로 집들이 있다. 대다수 까사를 운영하는 듯하지만 난 에어비앤비로 미리 본 까사를 이용했다.

 

처음에는 멀리 있는 줄 알고 자전거 택시를 타고 갔다. 생각보다 저렴했다. 2 쿡인가 했을 거다. 이 이야기는 뒤에 더욱 자세하게 다루겠다.

 

플라야 델 히론에만 집중하자. 여기 플라야 델 히론에서 1박 2일만 지내려고 했는데 2박 3일로 변경했다. 근처 위치한 꼬꼬 비치만 보고 좀 쉬다가 가려고 했는데 그 유명한 '깔레따 부에나'를 뒤늦게 알았던 것이다.

 

깔레따 부에나는 자연이 만들어 준 천연 리조트다. 바위가 둘러싼 작은 해변은 스노클링을 즐기기에 제격이고, 육지에는 간단한 뷔페식당과 미니 바 그리고 용품 대여점만 설치했다. 선베드가 몇 개 놓여 있는데 자리 쟁탈전은 없었다. 슬그머니 가서 그냥 차지하면 되었다. 한 그룹은 햇빛을 원했고, 한 그룹은 그늘을 원했고, 한 그룹은 물과 가깝길 원했고 다들 원하는 니즈에 따라 흩어졌다. 물론 나는 물과 가까운 그늘로 찜.

 

트리니다드의 나뚜랄보다는 조금 아쉽지만 반나절 동안 실컷 수영하고 스노클링 했다. 아침에 들어가서 오후에 나왔으니 그날만큼은 제주도 해녀만큼 바다에서 보냈을 것이다. 여러 물고기도 구경하고, 수영도 하고, 뷔페도 먹고, 무알코올 피냐 꼴라다도 마셨다.

 

이 하루를 위해 나는 버스 티켓을 미룬 것이다.

 

플라야 델 히론 자체에는 즐길거리가 전혀 없다. 우리와 같은 까사를 쓰는 여행자들은 스웨덴에서 온 모녀였다. 어머니는 노년을 바라보고 딸은 중년이었다. 두 분 모두 플라야 델 히론에서 4일 넘게 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평화로워서 좋다. 그런데 관광객이 많지는 않다. 식당도 적어 모두 까사에서 해결하는 듯했다.

 

나는 첫 저녁은 까사에서, 두 번째 저녁은 식당에서 이용했다. 그 식당도 까사를 운영하는 집에서 한 구석을 할애하여 공간을 내어 식당처럼 만든 곳이다. 집이자 식당이다. 쿠바의 거의 모든 비즈니스는 가내 수공업이다.

 

두 곳 모두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트리니다드에서 지낸 차메로네보다 요리 실력이 더 좋았다. (차메로씨 미안) 쑤는 삶은 감자가 그렇게 맛있다고 다 먹어버렸다. 감자가 맛있는 집은 처음이다. 랍스터도 촉촉하고, 생선도 알맞게 익었다. 정말 우리 엄마가 요리해준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쿠바 가정식이다. 엄지 척!

 

마지막 날 오전에는 해변에서 보냈다. 늦은 오후에 버스가 있어 시간이 충분했다. 10분 정도 걸어가면 괜찮은 해변이 나온다. 수영도 조금 하고 일광욕을 즐겼다. 이제 바다는 빠이빠이니까. 아바나에서는 이런 바다와 해변을 찾기 어렵다. 오직 거친 말레꽁과 파도만 존재한다. 

 

해변에서 우리는 조금 싸웠지만 잊어버리자. 즐거운 것만 쓰자. 딱 한 마디만 더 보태자면 역대급으로 제일 크게 싸웠다. 아무래도 그동안 여행하면서 서로 쌓인 것이 많았나 보다. 

 

결국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플라야 델 히론에서 아주 크게 싸움이 난 건데, 조금 아쉽긴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싸운다고 이 평화로운 마을이 시끄러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플라야 델 히론은 지금도 역시 평화로울 것이다. 한쪽은 바다, 바다를 등지고 걸어 올라가면 양갈래로 나뉘는 길,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늘어선 까사들 그리고 고요한 동네, 적당히 시끌벅적한 깔레따 부에나, 모든 것이 평화롭고 한적한 플라야 델 히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