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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열아홉 번째 이야기, 사회주의 체제 속 회색의 서비스 정신

by cardo 2020. 4. 22.

냉전시대가 끝난 지 한참 지난 요즘은 전 세계 수많은 국가 중 사회주의 시스템을 철저히 유지하고 있는 곳을 찾기 어렵다. 북한을 포함한 여러 독재국가에서도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 요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시장 경제란 인간의 본성과도 같은 것 아닐까. 자본을 쌓고 싶어 하는 인간을 억누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몇 안 되는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들 중에 쿠바도 있다. 아직도 꽤 강하고 남아있기에 오히려 외국인 관광객에게 여행의 매력을 제공한다. 지하철에서도 와이파이하는 국가에서 온 나는 공원에서 와이파이 카드를 동전으로 긁고 일련번호로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시스템 속에서 쿠바 노동자들은 어떨까? 한 달 동안 유명 관광지인 올드 아바나를 구경하고, 현지인 주거 지역인 베다도에서 생활해보니 완벽하게 알 수는 없어도 몸으로는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절대 '쿠바인들은 이렇고, 서비스는 이런 수준이다!'라고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내가 몸소 겪으며 이랬던 것 같은데?'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서비스 정신이란 것을 일단 거칠게 분류하자면 2가지 형태로 나뉜다. 불친절과 친절. 하지만 하나만 덧붙이면 대다수 쿠바인들은 그 사이다. 정확히 딱 그 중간이다. 당연히 극단보다 중간이 많지 않냐고 따질 수 있다. 하지만 쿠바를 여행해본 자라면 느낄 수 있다. 가게 점원이고 웨이터인데도 불구하고 대다수 쿠바인 점원들은 굉장히 중립적인 서비스 정신을 자랑한다. 까마귀도 백로도 아닌 완전무결한 회색을 자랑하는 새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새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서비스 정신은 쿠바에 존재한다.

 

이게 무엇이냐면 불쾌함을 느낄 정도로 불친절하거나 막대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절대 살갑게 대하거나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멕시코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부에노스 디아스'를 입에 달고 산다. 지니가면서도 인사한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처럼 인사가 잦다. 

 

쿠바는 우리나라랑도 그런 면에서 비슷한데 절대 낯선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 대다수는 당신의 호주머니가 궁금한 삐끼일 것이다. 호객행위를 제외하고 친절을 경험하기 어렵다.

 

식당에서 예로 들면 친절을 경험한 것이 매우 드물다고 말할 수 있다. 관광지역이나 나름의 힙한 맛집을 방문했을 때 뿐이다.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고 일하며, 퓨전식이나 굉장히 맛나고 인테리어 잘 되어 있는 식당의 경우 웨이터가 친절하고 친근하다. 먼저 인사도 건넨다. 근데 알아둘 점은 그런 식당은 아바나에서 매우 소수라는 점이다. 대다수 관광객 대상 식당이나 현지 식당은 분위기가 다르다.

 

일단 소리를 내어 불러야지 온다. 눈짓으로 눈치껏 오는 경우는 잘 없었다. 그리고 높낮이가 없다. 주문을 하면 '씨(Si)'를 답할 뿐이다. 자주 갔던 엘 토케 샌드위치 가판대의 여자 점원도 내 얼굴을 알 텐데 단 한번 미소 지어준 적이 없다. 낯선 여자의 미소를 구걸할 정도로 이상한 남자는 아니지만 한 달 가까지 얼굴을 보며 음식을 주문하고 받아갔는데 단 한번 인사를 먼저 건넨 적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고 불친절한 것은 아니다. 무례하게 대한 적도 없고, 인종차별적인 말도 한 적 없다. 군말이 없다. 점원의 서비스가 아주 군살 쫙 빠진 담백함 그 자체다. 용건이 중요하고 사족은 없다. 먼저 다가와 분위기를 풀어주거나 적극적으로 응대하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하다. 만약 아니라면 내가 문제일 것이다. 내가 무례하게 생겼거나 기분 나쁘게 행동해서 그럴 것인데. 내가 모르는 쿠바의 매너가 있을 수도...

 

까사 주인들은 대개 친절하고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지나가는 수많은 쿠바인들은 나에게 무신경했다. 친절과 불친절 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길을 물으면 길을 답한다. 만약 덧붙여서 뭔가 친절을 베푸려고 하면 그는 분명 삐끼일 것이다. 

 

쿠바에서 친절한 사람들은 모두 삐끼인 것이냐? 대다수 그렇다. 특히 아바나는 거의 그렇다. 유독 친절한 웨이터나 식당 앞에서, 택시에서 적극적으로 호객 행위를 하고 말을 거는 사람은 버는 만큼 내가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듯하다. 그렇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도 인센티브 제도가 있던 것이다. 스스로 돈을 버는 사람, 외국인 관광객을 데리고 오는 만큼 버는 사람들은 적극적이고 그렇지 않은 대다수 점원들은 회색지대에 존재한다. 

 

오해는 하지 말자. 난 그 회색 지대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다. 용건만 해결해주고, 불필요한 말은 아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무신경하다. "None of my business"인 것이다. 쿨한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사회주의 국가라 조금 딱딱한 듯한데, 그것도 쿠바 나름대로의 분위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