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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스무 번째 이야기, 우르르 쾅쾅 엘 비키 레몬파이

by cardo 2020. 4. 24.

나는 자칭 타칭 빵돌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 빵집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어떤 타입의 빵돌이냐 하면, 먼저 미식가는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맛있는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빵 자체를 좋아한다. 슈퍼마켓에 가면 공장에서 나온 텁텁한 단팥빵, 식빵의 제품들마저 일단은 잠깐 멈춰 서서 구경할 정도랄까. (쑤가 날 한심하게 보는게 느껴진다)

 

멕시코와 쿠바에서도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지나가는 빵마다 구경하고 맛보고 싶었다. 쑤의 제지만 아니었다면 군것질을 입에 매달아 놓고 지냈을 터다. 살도 빠지지 않고 오히려 쪘겠지.

 

쿠바에서 맛있는 빵집을 찾기란 점심시간 손님 없는 은행 찾기처럼 어렵다. 아니 그보다 더 어렵다. 쿠바에서 주식은 쌀밥 혹은 통밀빵인 듯 하지만 제빵 기술도 발달하지 않은 데다 예전 스타일을 구사한다. 게다가 버터나 각종 식재료가 풍부하지 않은 탓에 맛있고 촉촉하고 쫀득한 빵을 찾기 어렵다. 죄다 퍽퍽하고 바싹 마른 데다 시럽이나 소스를 발린 빵도 진한 맛이 나지 않는다. 거진 설탕 맛이다. 딸기 시럽을 넣어도 그냥 단 맛, 초코를 발라놔도 그냥 설탕 맛이었다.

 

이런 맛집 베이커리의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 같은 곳을 하나 발견했으니 바로 '엘 비키(El Biky)'다. 집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서 더욱 좋았다. 바로 옆 동명의 식당을 찾아가던 중 알게 되었다. 같은 곳에서 베이커리와 외식 산업을 같이 하는 듯 했다. 베이커리는 아주 조그맣고 귀여운 곳인데 쿠바 현지 타 베이커리에 비하면 아주 세련되고 깔끔한 편이었다.

 

이 빵집은 맛집이라고 써붙여 놓은 셈이었다. 처음 발견했을 때도 엘 비키 식당을 둘러보는데 옆 베이커리 앞에서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것을 보고 알았다. 빵돌이로서 직감을 놓치지 않고 말리는 쑤를 뒤로 하고 냅다 뛰어가서 확인해보니 역시나 사람들이 한아름씩 타르트와 파이, 각종 빵을 사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 뒤로 방문을 호시탐탐 노려봤지만 쑤의 제제와 사람들의 긴 줄 때문에 포기하곤 했다.

 

드디어 애매한 평일 오전 시간에 사람들의 줄이 짧을 때 도전해볼 수 있었다. 경비원의 철저한 통제 속에 한정된 인원만 들어갈 수 있어서 난 더욱 애가 탔다. 빵집은 단순히 빵을 먹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다. 향긋한 빵 구운 냄새를 맡으며 휘황찬란한 각종 빵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크다.

 

발을 동동 구르며 응가 마려운 애기처럼 기다리다가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작은 가판대 안에는 케이크와 파이와 타르트 그리고 크루아상이 있었다. 그리고 점원의 계산대 뒤편으로 기본 빵인 식빵, 통밀빵(깜빠뉴 종류), 바게트 등이 있었다. 우리는 둘러보고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메뉴 고르는 직감은 쑤가 좋은 편이다. 딱 보고 맛있을지 없을지 판단하는데 대체로 10번에 9번은 쑤가 옳았다.

 

초코 에끌리에, 크루아상 그리고 레몬 파이 1조각을 시도했다. 더 구매하고 싶었지만 아직 이 집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신중했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디저트로 맛보았다. 다른 빵들도 모두 온전한 빵이었다! 지금까지 쿠바에서 맛본 퍽퍽하고 질긴 빵, 다 눅눅해진 크루아상에 대한 분노를 잊게 만들어주는 맛이었다. 아바나에서 빵은 여기다!

 

특히 레몬 파이가 가장 맛있었다. 겉은 풍부한 레몬 맛을 느낄 수 있었고, 속은 크림치즈를 부드러웠다. 겉면은 과자처럼 바삭하게 구워져있었는데 쑤와 나 모두 좋아하는 부위였다. 레몬 파이가 가장 마음에 들어 다음 방문 때는 아예 한 판을 구매했다. 난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 1등 도장을 받은 아이처럼 득의양양하게 레몬 파이 한 판을 들고 집으로 갔고, 쑤는 가는 길 내내 하루에 2개 넘게 먹지 말자고 당부했다. 

 

이때부터 아침에 커피와 함께 혹은 저녁을 먹고 나서 디저트로 레몬 파이를 먹기 시작했다. 쿠바에서 하루가 너무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 뚜 띠엠포의 아침 뷔페를 먹지 않는 날이면 커피와 레몬 파이를 즐겼는데 고소한 커피 향과 씁쓸한 커피맛 그리고 상큼하고 부드러운 레몬 파이와 함께라면 쿠바 독재자 피델도 부럽지 않을 사치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레몬 파이를 먹은 뒤면 항상 뱃 속에서 심상치 않은 징조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몰랐다. 쿠바에서 뭘 잘못 먹었는지 모른 채 계속 배에서 가스가 차는 경험을 했다. 아랫배가 자꾸만 우르르 쾅쾅 소리를 내고 불편해지는 증상이었다. 쑤와 나는 몇 번이고 화장실을 가봤지만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큰일을 저렴하게 표현하자면 응가다)

 

레몬 파이를 먹기 시작한 날부터는 계속 배에 신호가 없는데도 우르르 쾅쾅 소리가 나고 살살 아팠다. 마치 응가 마려운 듯한데 화장실에 가서 앉으면 함흥차사였다. 미칠 노릇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원인을 몰랐다. 

 

때는 내가 레몬 파이를 먹고 불안했던 쑤는 안 먹은 날이었다. 그날 하루는 모든걸 나눠 먹었지만 레몬 파이만은 나만 먹었다. 쑤는 좀 물리는 데다 안 먹고 싶다고 했는데. 그날 나만 또 아랫배에서 우르르 쾅쾅하면서 배가 살살 아파오는 것이었다. 나는 배를 움켜쥐며 '레몬파이다, 레몬파이가 원인이다'며 유레카를 외치듯 깨달았다. 

 

고마웠던 레몬 파이는 애증의 레몬 파이가 되었고 한 판을 구매했기에 12조각 중 아직 3조각이 남은 상태였다.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버렸을까?

 

아니다. 나는 우르르 쾅쾅 따위 상관없었다. 쿠바에서 맛있는 빵을 먹기란 한여름 해운대에서 빈 숙박시설 찾기와 같기에 난 있을 때 먹었다. 지금은 너무 맛있으니까, 딱 40분 후의 우르르 쾅쾅 따위는 잊을 수 있었다. 엘 비키의 레몬 파이는 나에게 하늘 같은 맛을 선사했다. 천둥과 햇살이 오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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