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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비문학

책 리뷰: 선량한 차별주의자

by cardo 2020. 4. 3.

세상에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이 많다. 대다수가 선량한 차별주의자다. 차별인 걸 알지만 대수롭지 않으니까 그냥 하는 경우도, 차별인지도 모르고 차별을 하는 경우도 많다. 

 

소수자 인권과 성 평등, 장애인 권리 등 인권과 다문화 전문가인 저자 김지혜 씨도 선량한 차별주의자다. 인권에 대해 공부하고 가르치는 분도 선량한 차별주의자니, 우리 모두 이 굴레를 벗어나긴 불가능에 가깝다. 

 

책을 쓴 계기는 자신이 어느 모임에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고 그것에 대해 지적을 받은 경험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관용적인 표현으로 결정장애를 썼는데 이는 장애를 가진 자에게 무례하고 불쾌한 표현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차별주의적 발언이자 농담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것들도 많다. 잘 못 들으면 '귀가 막혔니?', '귀머거리냐?'부터 책에서 나온 '결정장애'라는 표현까지 무궁무진하다. 인류의 역사는 모욕과 차별, 편 가르기로 가득하다.

 

우리가 차별하지 않기 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의식하고 공부해야 한다. 나도 어릴 때를 생각하면 아찔했던 발언들이 많고, 무례한 사람이었다. 조금씩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 여전히 갈 길은 멀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난 여전히 차별주의자구나'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난 차별주의자였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고 했는가? 이세상에는 얄미운 시누이 투성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의 의도는 선량하고 악의가 없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쟁과 결이 비슷하다. 말한 사람이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에 불쾌함을 느낀 사람이 있다면 사과하고 바로잡는 것이 올바르다.

 

우리가 완벽할 수는 없다. 이 책을 읽으면 '와, 내가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어떻게 실천해? 그럼 아무 말도 못 하겠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면 안된다고 한다. 이게 가장 무서운 포기이자 차별의 시작이라고 저자는 염려한다.

 

비록 우리가 성인군자가 아니지만 호모 사피엔스 아닌가? 진화와 발전을 거듭한 동물이다. 왜 과학 기술은 계속 발전하면 좋고, 새로운 스마트폰은 더 빠르고 예쁘길 바라면서 스스로의 말과 생각은 그대로 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더 많은 이를 존중할 수 있도록 의식하자. 이 책의 저자도 말한다. "더 잘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 부족했던 점을 인정하고 고치는 것도 인간이다.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우리에게 스마트폰의 새로운 칩처럼, 우리의 의식을 보다 넓고 포용성 있게 만들어주며 우리의 부족한(차별적인) 부분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준다. 

밑줄 친 구절

미국의 인종차별 개선은 특권을 잃는 백인의 입장에서 흑인보다 더욱 크게 체감한다.
평등을 총량이 정해진 권리에 대한 경쟁이라고 여긴다면, 누군가의 평등이 나의 불평등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어렵고 복잡하다. 하지만 이 다중성을 생각해야 비로소 내가 차별을 받기도 하지만 차별을 할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차별을 받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부족하고 열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저항을 하지도 않는다.
구조적 차별은 이렇게 차별을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미 차별을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어서 충분히 예측 가능할 때, 누군가 의도하지 않아도 각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차별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생긴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일수록 그 선택은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니, 최대한 안전한 결과를 얻기 위해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이미 분리 자체가 흑인 아동의 마음속에 열등감을 심어주고 있었고, 그 열등감 때문에 교육의 성취가 낮아질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유머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 대상보다 자신이 우월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의 관점이 언제나 지배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당한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도 시민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법이 부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치의 반유대인 정책이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등 법을 통해 부정 의한 사회질서가 만들어지고 집행된 경험을 통해 충분히 깨달았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의견을 거침없이 공격할 수 있다. 반면, 소수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된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서 잘 말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사실상 침묵을 강요한다.
인정은 단순히 사람이라는 보편성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사람이 다양하다는 것, 즉 차이에 대한 인정을 포함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국내도서
저자 : 김지혜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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