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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서른 한번째 이야기, 아바나 500주년 축제

by cardo 2020. 5. 12.

2019년 4월은 아바나가 500년을 맞이하는 달이었다. 나는 아바나에서 마지막으로 머무는 주에 다행히 구경해볼 수 있었다. 4월 중순부터 조금씩 표지판이나 기념 예술품들이 생기더니, 4월 21일 일요일에 가장 크게 열렸다. 잔치는 올드 아바나와 베다도 지역 사이, 캐피톨 건물 뒤편에 위치한 큰 골목에서 열렸다.

 

올드 아바나로 가는 구아구아를 타면서 지나가니, 축제를 분주하게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식당들은 거리에 테이블과 의자를 준비하고 구이통을 세팅했다. 가설 무대도 생기고 있었고, 여러 길거리 음식 포차들도 영업 준비 중이었다. 나는 2019년이 아바나가 5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주요 이벤트가 4월에 열릴 줄은 몰랐다. 잔치라면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르는 나는 꼭 쑤와 구경해보자고 약속했다. 

 

우리는 올드 아바나에서 베다도 지역으로 돌아오는 말레꽁 길에서 여러 예술 작품들을 보았다. 벽에 농구 골대를 붙이고 그 위에 장난스럽게 앉은 사람들의 사진이 걸려있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공중부양 자세의 조각상을 구경하기도 했다. 익살맞은 그림들과 조각들이 말레꽁을 꾸미고 있었고 현지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거나 유쾌하게 웃으며 구경했다. 파브리카 델 아르떼 쿠바노에서도 느꼈지만 쿠바 현대 예술은 어렵기보다는 단순하고, 진지하기보다는 픽하고 웃게 만들어주는 익살을 가졌다.

 

숙소에 돌아와 조금 쉬다가 큰 잔치가 열릴 것 같던 거리로 걸어갔다. 베다도와 올드 아바나 사이에 있어 걸을 수 있는 정도의 위치였다.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더 붐비고 고기 굽는 냄새도 진해졌다. 크게 두 골목에서 잔치가 벌어졌는데 올드 아바나와 더 가까운 골목에서 더 크게 열렸다. 식당들은 좌판을 깔아놓고 연신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구워댔다. 노천에서 닭고기를 구워 대접하니 보는 맛도 먹는 맛도 더 좋을 듯하다.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꼬챙이에 꽂아 돌돌 돌려가며 골고루 굽는데 고기가 가진 기름이 뚝뚝 떨어지면서 감칠맛이 돌아보였다.

 

고기와 밥을 파는 곳 말고도 빵이나 디저트를 파는 곳도 있었다. 핫도그를 파는 노점도 있었다. 난 역시나 빵과 디저트를 파는 노점을 열심히 구경했다. 가격이 저렴했다. 큰 기본 빵 한 덩이가 1쿡도 안 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그 한 덩이의 크기는 190cm의 거구인 내가 한아름에 꼭 안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난 구매하고 싶었다. 저 정도면 쿠바를 떠날 때까지 아침마다 찢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쑤는 퍽퍽해 보인다고 반대했다. 그녀는 빵 겉면을 버터로 발라 촉촉해 보이는 빵을 좋아한다. 그런 빵은 쿠바에서 찾기 어렵다. 

 

대신 디저트는 몇 개 구매했다. 이름 모를 디저트들이었다. 동그란 파이처럼 생겼는데 중간에 초코 잼이 발려져 있고, 꼭 우리나라의 버터링같은 과자도 있었다. 버터링 종류의 쿠키 몇 개를 구매했다. 다섯 개 정도 구매했는데 1 쿡이었다. 

 

가설무대에서는 특유의 살사 노래가 나오고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열심히 춤을 췄다. 술을 거하게 마신 아저씨부터 흥이 넘치는 아줌마까지 살사 스텝을 받거나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박자에 맞춰 놀고 있었다. 잔치의 모양새는 어느 곳이나 비슷하다. 야외에서 고기를 굽고, 각종 간식과 패스트푸드를 판다. 술에 취하거나 흥에 취한 사람들은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춘다.

 

나도 소심하게 어깨를 으쓱으쓱 그리고 원데이 클래스에서 배운 살사 스텝을 몰래 살짝 밟아보며 지나갔다. 아바나 500주년의 흥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해가 지고 배가 고팠다. 한 야외 식당으로 들어가 구운 돼지고기와 닭고기 하나씩 주문했다. 사람들이 붐벼 겨우 찾은 곳인데 일단 우리에게는 외국인 전용 메뉴를 보여줬다. 우리는 고개를 흔들며 현지인이 먹는 음식을 가리키며 우리도 저걸 먹고 싶다고 전했다. 

 

종류는 단순했다. 고기 종류와 익히는 방법만 고르면 해당 고기와 쌀밥 그리고 야채가 한 접시에 나온다. 난 찐 돼지고기를 쑤는 구운 닭고기를 했다. 돼지고기는 거의 먹지 못했다. 비위가 강한 나도 버티질 못할 만큼의 잡내가 났다. 돼지고기 잡내가 너무 심해 상한 것은 아닐지 의심을 했다. 상한 맛은 아니나, 축제가 열린 지 오래된 점, 쿠바에서는 향신료나 소스를 풍부하게 쓰지 않는 점, 이런 것들 때문에 잡내가 심한 듯했다. 구운 닭고기는 먹을만했다. 어느 낯선 곳의 이름 모를 식당에 들어가도 닭고기는 최소한 실패하지 않는다. 

 

돼지고기를 다 먹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축제에서 구매한 버터링 쿠키로 입을 달랬다. 어두운 밤 파도가 몰래 몰래 치고 들어오는 말레꽁을 걸으며 쑤와 대화를 나눴다.

 

"아바나가 500주년을 맞이하다니 진짜 역사가 깊은 도시였네."

"그러게, 근데 500주년이면 그 전에는 뭐가 있었을까?"

 

아바나 500주년의 기준은 스페인이 침략하고 이 곳을 '아바나'라고 명명하고 도시를 건설한 때부터다. 그 때가 1519년이다. 1519년 전에는 뭐가 있었을까? 

 

쿠바 리브레 스토리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는 그전에는 원주민들이 지냈다고 한다. 멕시코나 남미처럼 큰 문명을 구축한 국가는 없었으나 부족 개념으로 지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는 쿠바 원주민 혈통의 씨가 말랐다고 한다. 대다수가 흑인 아니면 유럽계 혼혈이다. 정복자가 원주민을 학살하고, 강제노동을 시키고, 전염병을 퍼트려서 씨가 말랐다고 한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튼튼한 흑인을 노예로 삼아 데리고 왔고 아바나는 노예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500년이란 세월이 지나 원주민은 사라지고, 정복자와 노예의 후손들이 아바나를 축하한다. 사회주의 기반의 독재 시스템 속에서.

 

쑤와 대화를 나누고 난 뒤 역사란 아이러니한 맛이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