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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서른 세번째 이야기, 쿠바 채소는 유기농 못난이 농산물 투성이

by cardo 2020. 5. 15.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식료품과 농산물은 깔끔하게 포장되어 반짝 빛나는 것들이다. 투명하리만큼 하얗게 빛나는 형광등 아래 잘 정돈되어 오색을 자랑하는 채소들과 과일 그리고 흠잡을 곳 없는 매끈한 상품들이다. 우리는 채소나 과일을 집어 이리저리 살펴본다. 상한 곳은 없는지, 청결한지, 문제가 없을지 꼼꼼히 살펴보고 신중하게 고른다.

 

자본주의와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는 못난 채소와 과일은 선택받지 못한다. 그래서 B급 식료품을 모아 유통 판매하는 착한 기업도 생기고, 못난이 과일과 채소를 활용하여 요리를 제공하는 착한 레스토랑도 생긴다. 타칭 B급이라 칭해지는 조금 모난 식료품은 의식적으로 챙겨야 한다. 우리는 이 활동을 '착한'이라고 붙여주며 의식적으로 소비하고.

 

쿠바에서는 장을 볼 때는 사뭇 달랐다. 한 달을 지내며 때론 숙소에서 직접 요리를 해먹기도 했다. 마트에서 파스타 면을 구입하고 토마토 소스를 샀다. 숙소 근처 골목 한편에 위치한 식료품 가게에서 마늘과 파프리카, 파 그리고 바나나를 구입했다. 마트에서는 농산물을 판매하지 않는다. 가공을 거친 식료품만 찾을 수 있다. 각각 따로 구입해야 한다.

 

아바나에 있던 야채가게에서 봤던 충격은 잊을 수 없었다. 일단 파리가 엄청 날린다. 우리처럼 파리 끈끈이나 그런 것도 없다. 그냥 날라다니고 주인은 휘휘 쫓아내지도 않는다. 공존한다. 그리고 채소와 과일들에는 흙이 그대로 묻어있다. 흙이 묻어있다니!? 우리나라 마트에서는 감자와 고구마에도 흙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깔끔하게 농산물을 관리하는데 여기 가게는 흙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파프리카는 구멍이 뚫려있거나 생채기가 난 놈들이 대다수다. 바나나는 이미 익었다. 바로 까서 먹으면 좋을 상태다. 고추도 작고 볼품없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오죽하면 숙소 근처 가게 두 곳이 있었는데 한 곳은 조금 살펴보다 넘겼다. 파리가 많아도 너무 많았고 매대도 지저분해보였기 때문이다. 조금 더 걸으면 나오는 아침 식사를 주로 하던 카페 '뚜 띠엠포' 바로 옆 야채가게에서 주로 장을 보았다. 크기가 조금 더 작았지만 그나마 청결도 면에서 나았다. 

 

야채는 물론 흙투성이에 생채기 투성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B급도 아니고 C급에 가깝다. 지역 농산물 직판장보다 더 거친 놈들이 대다수다. 쑤는 아주 신중하게 골랐다. 멀쩡해보이는 (벌레가 먹지 않은) 파프리카 3개와 마늘 10톨 그리고 바나나를 구입했다. 가격은 쌌다. 다 합해서 1 쿡 조금 넘었다. 

 

집에 들고 와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마늘은 직접 껍질을 벗겼다. 통통하지 않고 홀쭉한 마늘들이었다. 까는 것에도 애먹고 막상 까보니 얼마 있지도 않아 실망했다. 파프리카는 촉촉하고 탱탱하지 않았다. 쭈글 한 놈도 있었다. 열심히 씻고 한입 베어 먹었다. 보기와 달리 파프리카 특유의 쌉싸름하면서 단 맛은 좋았다. 보기와 달리 괜찮은 놈이었다.

 

각종 야채를 잘게 썰고 참치 한 캔을 따서 파스타 소스를 만들어 먹었다. 비록 설탕이 없어 연유를 넣고, 향신료가 부족해(향신료는 대량이라 한 달만 지낼 건데 사기에 망설여졌다) 고추장을 넣어 소스를 만들어냈지만 생각보다 맛있었다. 오랜만의 고추장 맛도 반갑고, 쿠바에서 직접 장을 보고 요리해먹었다는 성취감도 더해져 한 그릇을 알차게 비워냈다.

 

그 뒤로도 종종 야채가게로 가서 구입했다. 보면 볼수록 적응했다. 쿠바 식당의 파리떼처럼 점점 그 미관상 더러움과 부족함에 적응이 되었다. 

 

우리는 우리 손에 쥐어질 음식과 식재료가 어떤 과정을 통해 오게 되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A급 상태를 고르고, 깔끔하게 관리된 고구마에게서 흙의 기운을 느끼기 어렵고, 파랗게 설익은 바나나에서 진한 단맛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보니 쿠바는 미국의 무역장벽 탓에 자급자족을 해야 했고, 농사법을 오랫동안 연구했다고 한다. 독재자인 피델 카스트로도 기아와 영양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전 세계에 기아가 없어지는 것이 꿈이라고 종종 공식석상에서 말했다. 이런 덕분에 쿠바의 농산물은 95%가 유기농 농법으로 만들어진다. 전국적인 물류 시스템이 구축되지 못했으니 거의 대부분이 로컬 생산물이다. 현지에서 해결하는데 산지 직송인 것이다. 

 

쿠바에서 봤던 흙이 묻고 벌레가 좀 먹은 야채와 과일들은 알고 보면 건강한 유기농법에 산지 직송으로 땅에서 뽑자마자 바로 트럭에 실려 매대에 올려진 것들일 가능성이 높다. 보기에는 거칠어도 맛은 달달했던 파프리카처럼 겉모습과 달리 영양도 건강한 유익균도 풍부한 놈들이다. 현대인에게 부족하다는 비타민 B12도 농산물에 묻은 흙의 건강한 박테리아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우리는 완벽히 세척된 것들만 먹기 때문에 더 이상 섭취할 수 없어 영양제를 따로 챙겨 먹어야 한다.

 

우리는 유기농이나 친환경을 외치면서도 여전히 마트에서는 맨들맨들 뽀얀 채소들에 눈을 돌린다. B급 상품들은 따로 모아져 착한 소비라는 동정심에 의해 사용된다. 흙이 묻고, 생채기가 있고, 벌레가 먹은 야채들을 더럽고 흠이 있는 농산물을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