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서른 두번째 이야기, 카페 초콜라떼와 프레사를 추천해준 노부부

by cardo 2020. 5. 13.

살사 댄스 클래스에 참여하는 날이었다. 원데이 클래스였고 에어비앤비를 통해 찾은 수업이었다. 아바나에서 처음 가보는 지역에 위치했는데, 맵스미를 찾아보니 존 레넌 공원 근처에 있었다. 존 레넌이 아바나를 방문했을 때 이 공원에서 짧은 버스킹 콘서트를 열었다고 한다. 반전과 평화를 노래하고, 미국과의 관계 도모를 위한 활동이었고 이에 감동한 쿠바 정부는 이 공원을 존 레넌 공원으로 명명한다. 는 이야기 따위는 없다. 그냥 존 레넌 공원이고, 존 레넌 동상이 벤치에 앉아있다. 돈키호테 공원이나 다른 공원처럼 그냥 그 이름을 짓고 동상 하나 지으면 된다.

 

원데이 살사 클래스를 마치고, 근처의 유명한 공동묘지를 방문했다. 스페인으로부터 가톨릭 종교의 영향을 받았기에 우리나라의 유교 문화처럼 기본적으로 대다수 쿠바인들의 종교 양식은 카톨릭이다. 공동묘지는 크고 공원 같고 조용했다. 강렬한 카리브해의 태양 아래에서 비석들이 빛나고 때로는 생전에 위엄을 표현하려는 고급스러운 묏자리도 보이기도 했다. 내부로 들어가서 자세히 구경하고 싶었지만 돈을 내야 했다. 돈을 내면서까지 남의 묏자리를 구경하고 싶지는 않아서 바깥에서만 구경하다 나왔다.

 

그런데 여기 지역이 나름 쿠바인의 중산층이 주거하는 동네 같았다. 여러 극장같은 시설도 보이고, 마트도 크고 식당과 카페도 나름 근사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 아닌 현지인들이 이용할 곳들인데 꽤 괜찮았다. 쑤와 나는 살사 댄스도 추고 뙤약볕 아래에서 묘지도 구경했기에 갈증이 났다. 복합 쇼핑거리처럼 보이는 공간에 마트가 있었고, 그 앞에는 그늘 아래 테이블과 벤치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하이네켄 병맥주 두 병을 구매하려고 마트에 들어갔다. 아이스크림도 팔고, 과자도 팔고, 각종 식료품을 파는 근사한 가게였다. 쿠바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구색이 잘 갖춰져 있었다. 

 

줄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노부부가 영어로 말을 걸었다. 영어는 알아듣기 쉽게 분명했고 정확했다. 나는 갑자기 말을 건 것에 놀라 대화를 나눴다. 

 

"어느 나라 사람이야? 쿠바는 마음에 들어?"

"한국 사람이고, 그런대로 좋아요. 여행하기 재밌어요. 한 달째 머무는데 흥미롭네요!"

"흥미롭긴 무슨! 우린 아주 괴롭다고. 골치 아프다네!"

 

할아버지는 가게가 울릴 정도로 목청이 좋았다. 우리네 할아버지가 그렇듯 반팔 셔츠에 면바지를 입은 깔끔한 차림새에 키가 조금 크고 마른 할아버지는 목소리만큼은 대단했다. 

 

"우리는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도 못해. 외국을 못 가. 내 친구네는 옛날에 다 미국 가고, 내 자식놈들도 다 미국에 갔어. 알아? 독재자라고."

 

나는 처음으로 쿠바인의 입에서 독재자를 비판하고, 자유를 외치는 말을 들었다. 

 

"내 자식들은 다 미국에서 지내고 있어. 난 빠져나가려다 실패했지. 저놈 양반 딸내미도 미국에서 지낸다고. 딸내미가 보내준 돈으로 이 가게를 차려서 먹고 사는 거야. 우리가 다 이모양이야."

 

가게 주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화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답답한 속을 낯선 아시아인 외국인에게 풀어내는 듯했다. 빠져나갈 기회가 너무 아쉽고 또 아쉬워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한다. '그때 쿠바를 떠나야 했었는데'

 

신기했다. 올드 아바나랑 그와 가까운 베다도 지역에 지내면서 열심히 먹고 사려는 쿠바인들(그렇다고 해봤자 까사 주인 정도)를 만났지 이렇게 염세적인 분은 처음이었다. 혁명 전에도 쿠바에서 지냈던 분 정도니까 변화를 더 느낄 수도. 나이가 많은데도 영어를 정확하게 구사하고, 차림새도 깔끔하고 유럽계 혈통이었다. 쑤와 나는 아마 왕년에 지식인층이었을 것 같다고 둘이서 예상을 해봤다.

 

할머니는 조용히 웃으며 몇 마디 거들뿐이었다. 그리고는 어디 어디 가봤냐고 묻길래 가본 곳 몇 군데를 대답했다. 여기서 괜찮은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있냐고 물으니 '초콜라떼 이 프레사(Chocolate y Fressa)'를 가보라고 했다. 이 근 방에서 가장 훌륭한 곳이라고 추천했다.

 

우리가 맥주 2병을 고르고 계산을 치르자 할아버지는 손을 휘휘 저으며 굿바이를 했고 우리는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여기 쿠바를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 존재하고, 모두가 피델 카스트로를 지지하는 건 아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방금 마주친 노부부에 대해 여러 예측을 하며 쑤와 이야기를 나눴다. 난 일명 소설 쓰기를 좋아한다.

 

"저 할아버지, 할머니는 분명 대학까지 나오셨을 거야. 유학을 갔다 왔을 수도 있지. 집도 잘 살았을 거야. 혁명이 성공하고 많은 부를 강제로 뺏길 때, 어린 자식들은 돈과 귀중품을 챙겨 미국으로 갔을 거야. 아니면 그래도 쿠바를 믿는다고 버티고 기다렸을 수도 있지. 하지만 쿠바는 점점 가난해지고 주변 사람들도 다 미국이나 외국 간 친인척이 보낸 돈으로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니까 짜증 나는 거지. 지금 정부랑 쿠바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고"

 

쑤는 내 말을 가만히 들어줬다. 그렇겠다며 연신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

 

빈 맥주병을 뒤로하고 우리는 식당을 찾아 나섰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식당을 들어가 보았는데 외국인과 현지인 전용 공간이 나눠져 있었다. 외국인 전용 공간은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가격 바가지가 무서워 현지인들이 먹고 있는 공간을 들어서는 몇몇 쿠바인들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식당 안 TV에서는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비추고 있었다. 토트넘과 맨체스터 시티의 2차전이었고 손흥민이 뛰고 있었다.

 

웨이터도 바로 다가오지 않았고, 현지인들도 '네가 왜 여길?'이란 표정 같았고, 뻘쭘해졌던 우리는 슬쩍 구경하고는 바로 나왔다. 옆 공간의 식당은 메뉴판에서 보여주는 가격부터 달랐다. 우리는 노부부가 추천해준 카페 '초꼴라 떼와 프레사'에 가보기로 했다. 대로를 건너 5분 정도 걸으면 되었다.

 

내부는 약간 어두웠지만 깔끔했다. 굉장히 조용했고 TV 소리만 들렸는데, 여기서도 모두가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보고 있었다. 가게 한 면에는 바텐더와 바가 있었고 그 바 옆에 대형 TV가 축구를 생중계하고 있었다. 우리는 커피 2잔을 시키고 앉아서 축구를 보기로 했다. 손흥민의 경기를 아바나에서 실시간으로 보았다.

 

카페 내부를 구경하니 꽤 근사했다. 찰리 채플린이나 옛날 영화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왠지 충무로의 영화 산업과 관련된 카페 그런 느낌이었다. 유명 극장 근처의 카페, 영화배우나 영화 산업 관련자들이 종종 방문했을 그런 곳. 

 

뒤편에는 아까 만난 그 노부부가 있었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 가게 때와는 다르게 과묵하고 쌀쌀맞다. 축구에 집중해서인지 아니면 아까 한을 다 풀어서인지 시큰둥했고 난 머쓱했다. 무슨 대단한 인연이길래, 내가 너무 반가워했나 싶었다. 손을 내리고 손흥민의 경기를 마저 보았다. 손흥민이 극적인 골을 넣었다. 영국에서는 손흥민이 팀의 결승전 진출을 결정지었고 난 쿠바에서 그걸 보았다. 쿠바인 노부부가 추천한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