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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서른 번째 이야기, 충격적인 비주얼의 쿠바 식료품과 상점들

by cardo 2020. 5. 11.

'그 나라의 형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슈퍼마켓을 가봐야 한다.'라고 초보 여행객 박 모 씨가 말했다. 박 모씨는 바로 나다. 쿠바 여행을 한다면 식료품점이나 상점들을 꼭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관광품 기념 가게나 외국인 대상 상점이 아니라 현지인 슈퍼마켓이나 잡화점을 꼭 가봐야 한다. '여기가 쿠바 구만!' 하는 감상이 절로 든다.

 

단순히 낡았다거나 볼품없다거나 그런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어느 구석진 동네에서 좁고 먼지 쌓여있고, 불편한 슈퍼마켓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쿠바의 식료품점과 가게는 완전 계보를 달리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일반 슈퍼마켓이 강아지라면, 쿠바의 슈퍼마켓은 고양이종이다. 쿠바가 콩이라면, 다른 나라는 아몬드랄까. 어쨌든 완전히 다른 종류다. 

 

일단 품목이 다양하지 않다. 품목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은 2가지를 의미한다. 구색을 갖추기 위해 보유한 물품의 종류가 많지 않고, 그 물품마저 동일한 브랜드의 동일한 상품이다. 예를 들어, 딸기잼을 판다고 하면 하나의 국영 기업이 똑같은 모양새로만 만들어 납품한다는 말이다. 딸기잼 코너에 가면 딱 하나의 딸기잼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딸기잼마저 없는 날도 있다.

 

어릴 때 북한의 실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식료품이 가지런히 정리된 가게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생수면 생수, 과자면 과자, 우유면 우유, 모두 똑같은 제품이 열을 맞춰 놓여져 있었다. 그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쿠바도 사회주의라 그런지 하나의 제품군에는 하나의 국영 기업만이 생산하는 듯했다. 자유 경쟁과 거리가 먼 국가 독점 시스템이다.

 

두 번째로 다른 점은 냉동 냉장 신선식품이 빈약하다. 몹시 빈약하다. 아바나에서 비교적 꽤나 크고 근사해 보이는 마트에 들어가도 육류나 어류 혹은 냉동식품을 넣어둬야 할 냉동고는 거의 비어있었다. 정말 휑하다. 거미가 여기가 내 집이네 할 정도로 궁핍한 모양새다. 경제가 힘든 쿠바다 보니 아무래도 정교하고 잘 짜인 물류 시스템과 생산 설비가 필요한 신선식품이 부족한 듯했다. 음... 힘들다는 점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마트에 냉동고와 냉장고가 휑하다. 대신 탄산음료와 과일 주스는 항상 갖추고 있는데, 생산비용이 더 싸거나 보관이 용이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상점에 대해서 언급해보자면, 비슷하다. 호텔 아바나 리브레와 연결된 복합 쇼핑몰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어두운 형광등 아래 몇몇 상점이 문을 열었다. 푸마 매장을 발견해서 들어갔는데 우리나라의 스포츠 브랜드 매장과는 조금 다르다. 약간 어두운(쿠바에서는 조명이 다들 전체적으로 어둡다) 조명 아래 축구화, 운동화, 운동복이 있었는데 종류와 개수가 조금 허전해보인다.

 

그리고 마트의 경우 날마다 보유한 물품이 다르다. 생수가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었다. 6L짜리 큰 생수만 보유한 날이 있는가 하면 500ml 생수만 있는 날도 있었다. 복불복이다. 생수뿐만 아니라 우유도 그렇고, 다른 품목들도 그렇다. 어느 날에는 어느 마트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는데 다들 가게에서 나올 때 식용유 한 통씩 안고 있었다. 그날은 식용유가 들어오는 날이었다.

 

한 달간 지내면서 불편한 점을 토로하는 거냐면 또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물론 불편했다. 도대체 생수 없는 마트가 세상에 어디 있냐고 소리 지르고 싶었고, 없는 걸 찾다가 지친 날도 있었다. 어느새 적응하게 되더라. 생수를 발견한 날에는 생수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미리 사두면 된다. 없으면 없는 대로 다른 걸 소비하거나 사지 않으면 된다. 사실 그런 게 하나둘씩 없거나, 모두 똑같은 딸기잼밖에 없어도 못 살 정도는 아니었다. 나중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쿠바 여행을 마치고 칸쿤으로 돌아갔을 때 충격을 먹었다. 칸쿤에서 월마트 같은 대형 마트를 찾아갔는데 충격! 세상에 없는 게 없는 파라다이스처럼 보였다. 과자면 과자, 생수면 생수, 맥주면 맥주 온갖 종류의 브랜드가 휘황찬란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나는 바로 자본주의의 소비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때 깨달았다. 다른 것 없다. 북한을 개방시키려면 북한 사람들 데리고 우리나라 이마트를 관광시키면 된다. 그럼 분명 이마트에 가고 싶어서 다들 북한을 탈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