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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스물 여덟번째 이야기, 헤밍웨이의 마을 꼬히마르 체험기

by cardo 2020. 5. 10.

나는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좋아한다. 누가 안 좋아하겠느냐만... 모두가 사랑하는 그를 나도 사랑한다. 헤밍웨이는 쿠바를 좋아했다. 헤밍웨이는 자기 작품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각종 상을 타면서 생활이 풍족해지자 쿠바로 이주했다. 이유는 자세히 모르지만 쿠바만큼 아늑한 피난처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생전에 수없이 유명인으로서의 피로감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던 만큼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는 조용한 생활을 원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쿠바에 직접 가보니 정말 쿠바인들은 외국인에게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 헤밍웨이가 꼬히마르에서 지내며 가장 유명한 작품인 '노인과 바다'를 써냈다. 나는 소설 '노인과 바다'를 좋아하고,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한 꼬히마르를 꼭 방문하고 싶었다. 

 

꼬히마르는 올드 아바나에서 모로 요새 방향으로 가면 나온다. 바다를 건너고 조금 더 들어가면 나오는 해변 마을이다. 우리로 따지면 인천과도 같은 개념이랄까. 구아구아를 타고 갔는데 잘못 내려서 한 번은 갈아탔다. 꼬히마르를 찾으러 가는 길에는 쿠바 현지인 주거지역이 나온다. 쿠바 리브레에도 나왔던 동네처럼 보인다. 낡은 아파트 단지와 텃밭 그리고 닭장처럼 보이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현지인들이 여기서 지내며 올드 아바나로 출퇴근하는 듯했다.

 

한번 환승하고, 버스에 내려서 10분은 걸어 꼬히마르에 도착했다. 마침 날이 너무 좋았다. 태양이 신나서 막 춤을 추며 광선을 쏘는 듯하는 날이었다. 한적하고 작고 가난한 마을인 꼬히마르에는 그늘을 찾기 어려웠다. 쑤와 나는 장범준 노래를 틀어 따라 부르며 최대한 그늘을 찾으며 열심히 걸었다. 

 

꼬히마르는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아마 출근시간이 지나 모두들 일하러 간 것 같다. 맵스미를 검색하는 제대로 된 식당도 1개뿐이다. 애초에 관광객들로부터 버림받은 듯했다. 내세울 것은 강력한 태양과 조용함 뿐이었다. 마을 중간으로 걸어 들어가니 공원이 하나 있다. 바다가 보였는데, 올드 아바나의 말레꽁과 달리 꼬히마르의 바다는 마을을 닮아 매우 조용했다. 파도도 치지 않았다. 작은 나룻배가 동동 떠있었는데 노인과 바다의 노인이 타고 다니던 배처럼 보였다. 작은 배라 큰 물고기를 낚으면 금방 뒤집어질 것 같은 그런 위태로운 크기였다.

 

공원은 놀랍게도 와이파이가 제공되는 와이파이 공원이었고, 놀랍지 않게 당연히 할 것 없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스마트폰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쿠바에도 스마트폰 이용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헤밍웨이 전시관을 찾았다. 와이파이 공원 바로 옆에 있었는데 오랫동안 잊히고 버려진 그리스의 작은 신전같이 보였다. 그리스 신전의 기둥을 닮은 기둥들이 여러 개 있었고 그 중심에는 헤밍웨이의 흉상이 있었다. 헤밍웨이인지 모르겠다. 파란색 기둥들 사이에 그의 얼굴 하나 덩그러니 있으니 더욱 황량해 보였다. 그 흉상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도 적혀있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봤는데 별 내용도 볼 것도 없었다. 버려진 헤밍웨이 신전 말고는.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망연자실하게 있었는데 누군가 다가온다. 기타를 맨 쿠바인이다. 기타를 치고 막 노래를 부른다. 낌새를 보니 우리에게 노래와 기타 연주를 제공할 테니 돈을 달라고 할 것 같다. 버려진 헤밍웨이 신전에서 어설픈 기타 연주라니 듣고 싶지 않았다. 손을 휘휘 저으며 미안하지만 '노'라고 분명히 말했다. 거리의 연주자는 조금 따라오며 기타 연주를 하다가 포기하고 그늘로 들어가 앉았다.

 

우리는 그늘을 찾을 수 없고 햇살에 지쳤다. 다시 공원으로 돌아와 나무 그늘 아래 조금 쉬다가 와이파이를 했다. 쿠바인들은 참으로 신기하다. 이 황량한 해변 마을에 아시아인 커플이 왔는데 놀랍게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처다도 보지 않는다. 당시 유명인 헤밍웨이가 고른 마을답다. 

 

갈증이 났던 우리는 구멍가게로 찾아가 마실 것이 있나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하이네켄 병맥주가 있었다. 초록색에 빨간 별이 박힌 하이네켄을 하나 구매해서 마시며 쉬었다. 나름 멀리 찾아왔는데 정말 할 것도 볼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공원에서 하릴없이 노닥거리는 쿠바인들 몇 명과 거리의 연주자 그리고 강렬한 태양만이 있었다. 우리는 올드 아바나로 돌아가 점심을 먹기로 결정했고 길을 나섰다. 

 

걸어가던 중 거대한 관광버스 1대가 마을에 들어서 멈추는 것을 보았다. 그 버스는 꽤 많은 미국인 관광객들을 토해냈는데 아마 헤밍웨이 마을로 한번 쓱 방문하는 스케줄인 듯했다. 우리는 관광버스를 뒤로하고 뜨거운 햇볕 아래 다시 장범준 노래를 따라 부르며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