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스물 일곱번째 이야기, 아바나를 잘 보기 위해서는 모로 요새로

by cardo 2020. 5. 10.

아바나를 방문한다면 반드시 꼭 반드시 해 질 녁에 모로요새로 가길 추천한다. 모로요새에서 아바나와 말레꽁을 내려다 보길 바란다. 시간을 투자하여 해가 지려고 기웃할 때쯤부터 완전히 져서 파래질 때까지 온전히 다 보길 추천한다. 꼭 하루는 그런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여행자가 아바나를 꼭꼭 씹어 삼켜서 완전히 소화하기 위해서는 모로 요새를 꼭 가야 한다. 

 

쑤가 모로 요새를 가기 귀찮아 했다. 바다 건너까지 멀리 가야 하는데 베다도에서 올드 아바나로 가기에도 귀찮게 만드는 쿠바의 교통 수단이라, 모로 요새까지는 더 멀게 느껴졌다.

 

모로 요새는 올드 아바나에서 작은 해협을 건너 위치했다. 올드 아바나쪽 말레꽁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언덕 위 작은 요새가 보인다. 그것이 모로 요새다. 스페인군이 아바나를 점령하고 난 뒤 지었다. 북중미와 남미의 중간에 위치한 섬이었던 쿠바는 노예 무역과 사탕 수수 무역 등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를 통제하고 지키기 위해 바다 건너 멀리 보이고 아바나를 지키고, 감시하기 위해 아주 적합한 위치에 있다.

 

내가 쑤를 설득하고 또 설득한 끝에 하루 날잡아서 아바나를 떠나기 전 마지막 주에 갈 수 있었다. 첫 주가 아닌 마지막 주에 방문하니 감회가 더 깊었다. 한 달간의 아바나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바라보는 말레꽁과 거친 파도는 지난 4주간의 시간을 떠올리게 했고 우리 둘은 걸터 앉아 빨갛게 젖어가는 아바나를 바라보았다.

 

말레꽁은 오래된 방파제라 거칠고 날카롭다. 파도가 말레꽁을 끊임없이 때리고, 말레꽁은 조금씩 깎여나간다. 부드럽게 깎이지 않고 날카롭게 깎여서 걷다보면 가끔 신발 밑창에 걸리곤 한다. 이 말레꽁은 아바나의 대표 명소인데, 아바나와 다사다난한 쿠바의 역사를 나타내는 것만 같아 단순한 관광 명소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 500년간 아바나는 스페인과 미국의 영향과 침략 아래 있었고 아바나 사람들은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다. 고통의 역사 끝에 그들은 조금씩 날카로워졌고 돈키호테 같은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 아래 완전한 독립을 하는데, 이때 쿠바는 말레꽁처럼 미국으로부터 꽁꽁 벽을 쌓고 만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이 먼저 장벽을 세웠기 때문이지만.

 

모로 요새에서 처음으로 파도가 말레꽁을 치는 모습을 보았다. 그전에는 말레꽁을 걸으며 가끔 튀는 파도 물살을 피하며 체감하곤 했는데, 눈으로 내려다 보니 여간 거친 파도가 아니였다. 꽤 굉장한 기세로 말레꽁을 두들겨 팬다. 코너에 몰린 복서를 사정없이 패는데 끊임없이 버티는 말레꽁이 대단해 보였다.

 

해 질 녘에 보면 아바나의 색상 변화를 한 눈으로 볼 수 있다. 해가 쨍쨍할 때는 건물의 다채로운 벽 색깔과 햇살에 반짝이는 말레꽁의 투박함이 눈에 띈다. 점차 해가 지기 시작하면 노래지다가 서서히 붉게 물든다. 이때는 건물의 민트색이나 파란색이나 초록색도 모두 붉게 물들어버린다. 봉숭아 꽃즙에 물든 손톱과 비슷한 색감이다. 

 

파도도 붉어지는 기분이다. 붉게 물든 파도가 물감이 되어 말레꽁을 적시고, 아바나를 적신다. 전부 빨갛게 물들 쯤이면 태양이 지평선에 걸쳐져 있을 때다. 태양이 지평선에 발을 디딜 때면 붉은 아바나는 마지막으로 빨갛게 빛나고 점차 어두워진다. 태양이 지평선 속으로 숨으면 아바나의 하늘은 급속도로 파래진다. 바람도 서늘해지고, 어둡다.

 

어둡고 파래진 하늘이 검게 변하기 전에 우리는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 구아구아 버스를 타러 갔다. 구아구아 버스는 모로 요새와 올드 아바나 사이에 놓인 해협 밑으로 지나가는 해저 터널 도로로 다닌다. 창문이 닫히지 않는 구아구아 버스를 탈 때만 해도 하늘은 아직 빛나고 파랬는데 해저터널을 지나고 올드 아바나에 도착하니 주변은 어두웠다. 아바나의 모든 색을 감상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