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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쿠바에는 두 세계가 있다

서른네번째 이야기, 아바나 이발소에서 머리 깎기

by cardo 2020. 5. 15.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보통 3~4주에 한 번씩 머리를 깎는다. 짧은 머리를 선호하고 이발소에서 깎는 걸 좋아한다. 그냥 이발소가 아니라 요즘 흔히 말하는 바버샵이다. 유럽 교환학생 시절 처음 가본 뒤 거의 바버샵만 고수하는 중이다. 클래식하고 깔끔한 헤어스타일이 잘 어울리고 또 시원하게 잘라주는 맛도 있어서 좋다.

 

3주만 지나도 짧고 깔끔했던 헤어스타일은 지저분해지기 시작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멕시코에서 1번, 쿠바에서 1번 머리를 깎았다. 참다못해 이발소를 갔는데 둘 다 썩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쑤에게 부탁해서 머리를 깎았는데 이건 영 아니다 싶었다. 

 

멕시코 와하카의 숙소 옥상에 올라가 의자에 앉아 거울을 들고 있는다. 쑤가 챙겨 온 숯 치는 미용가위로 이리저리 잘라보지만 듬성듬성 일정하지 못한 데다 무엇보다 너무 아팠다. 숯이 많은 편이라 가위가 잘 들지 않으면 자르는 게 아니라 끊는 것 같았고 그마저도 잘 끊어내지 못하면 쥐어뜯는 것 같았다. 난 항복을 선언하고 까치집 머리를 한 채 근처 바버샵으로 뛰어가서 전문 바버에게 맡겼다. 마음에 들었다.

 

이번 여행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 지낼 때도 이발소에 도전해보길  즐겼다. 이탈리아의 바버 할아버지에게 맡겨보기도 했고,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는 문신 투성이의 힙스터 아가씨에게도 맡겨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도전해보지 않을 듯한 곳도 쉽게 용기가 났다. 난 이방인이고 여기서는 누구도 평가하지 않으리란 자유로운 생각 덕분이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인도인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볶는 인도인 아줌마들 사이에서 머리를 자른 적이 있다. 가격도 싸고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나의 인터내셔널 이발 도전기는 쿠바 여행에도 이어졌다. 올드 아바나들 돌아다닐 때, 숙소 근처를 돌아다닐 때 틈틈이 이발소를 봐두었다. 숙소 바로 옆에 작은 이발소가 있었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배가 살짝 나온 30대 후반은 넘어 보이는 아저씨가 홀로 운영하였는데, 거의 평일 오후에만 영업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와이파이 공원에는 유독 남자 동성애자들이 많았는데 게이가 많은 지역의 이발소라 왠지 모를 선입견으로 신뢰감이 갔다. 

 

올드 아바나에도 이발소가 몇 군데 있었는데 더 좁고 낡은 곳이 대다수였다. 가격표랑 흘깃 내부를 구경하자 손짓을 마구 하면서 들어오라고 한다. 나를 반기는 이유는 내가 잘생겨서 훌륭한 헤어 모델이 되어주기 때문이 아니다. 가격표가 거의 모든 곳이 동일한데 외국인 이발 비용은 5 쿡이다. 내국인은 1 쿡으로 되어있으니 가격이 5배가 차이 난다. 버젓이 적혀있다. 내국인 25 모네다, 외국인 1 쿡.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대놓고 바가지 씌우는 나라도 흔하지 않다.

 

머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길어지고 덥수룩해졌을 무렵 결국 동네 이발소에서 자르기로 결심했다. 오고 가며 눈인사도 몇 번하고 손님도 꽤 자주 있었기 때문에 실력이 좋을 것이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리와 내부가 트여져 있어서 그 시원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 출입문이 없고 셔터만 있다. 쿠바의 대다수 소규모 가게는 따로 출입문이 없고 셔터를 올리고 내린다. 

 

한가한 어느 오후 날을 잡아서 쑤에게 갔다 온다고 하고 5 쿡을 받았다. 내 주머니에 5 쿡도 있겠다, 내 머리도 충분히 길었겠다, 쿠바에서 이발을 도전할 날이 온 것이다. 

 

신나게 달려서 가니 이미 손님 한 명이 자르고 있다. 나보고 기다리라고 한다. 나는 기다리면서 아이폰에 저장된 예전 사진을 뒤져본다. 말이 안 통하니까 사진으로 내가 원하는 머리 길이와 스타일을 보여줄 셈이다. 예전에 찍은 사진 중 헤어스타일이 가장 보기 좋게 나온 사진을 고르고 아이폰을 손에 꼭 쥐었다. 내 차례가 오면 바로 보여줄 셈이다.

 

기다리는 동안 이발사의 솜씨를 보니 거칠지만 시원시원하다. 바리깡 기계로 숭숭 올려치는데 거침없다. 살짝 불안하지만 이 또한 터프한 맛이 있으리라 위안 삼는다.

 

내 차례가 와서 손짓으로 날 부른다. 이발소 의자에 앉았다. 머리카락 방지용 흰 천을 나에게 두르기 전에 잽싸게 아이폰 속 사진을 보여줬다. '씨'하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이해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자에 몸을 푹 기대었다. 난 까탈스러운 고객이 아니다. 일단 요청을 하고 나면 전적으로 믿는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건 30분 후의 일이다. 현재는 내 머리를 전문가에게 맡기고 힐링할 시간이다.

 

바리깡으로 깎을 길이를 조절하고는 내 머리에 갖다댄다. 이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손길이 좀 억셌다. 이발소 의자를 축으로 날 슝슝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서 옆머리를 올려 깎는다. 그런데 조금은 날 부드럽게 대해주면 좋겠다. 바리깡 기계로 꾹꾹 눌러 깎는다. 이발사를 전적으로 믿지만 이런 불편함은 싫다. 

 

머리는 정말 금방 깎았다. 10분 조금 지났을 것이다. 옆 뒤 머리를 시원하게 꾹꾹 눌러 깎고, 윗머리는 가위로 쳤다. 다 끝났다고 하여 난 거울로 새로운 내 머리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썩 나쁘지 않았다. 이발비는 단돈 5 쿡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6천 원인 셈이다. 요즘 아무리 싸도 1만 원은 넘는데 이 정도면 괜찮다. 이발사도 외국인 손님이라 반기는 눈치다. 10분에 5 쿡이면 괜찮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제일 설렌다. 쑤의 반응이 궁금하다. "시원하게 잘 깎았네."라는 말을 들으니 안심된다. 머리를 감고 몸에 붙은 따가운 머리카락들을 씻어냈다.

 

그리고 며칠 뒤 올드 아바나를 구경하다가 어느 이발소를 발견했는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사진이 걸려있었다. 이게 뭔가 싶어서 안을 들여다보니 예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쿠바를 방문했을 때 여기 이발소에 온 듯했다. 이발사도 연륜이 꽤 된 점잖은 할아버지였다. 들어오라고 하길래 '루에고!(나중에)"라고 대답했다. 아쉬웠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깎은 이발소가 궁금했다. 혹시 아바나 여행을 앞둔 분이 있다면 여기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아보고 어땠는지 말해주면 좋겠다. 다음번에 가게 된다면 꼭 그곳에서 깎아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