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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비문학

책 리뷰: 천재들의 대참사, 실리콘밸리 유니콘 기업의 민낯

by cardo 2020. 8. 18.

책 ‘천재들의 대참사’는 52세의 저널리스트가 유니콘 스타트업 ‘허브스팟’에 입사하고 겪은 이야기다. 내 커리어도 스타트업이 전부라 솔직히 엄청나게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게다가 미국에서 인턴십하던 악몽 같은 경험과도 비슷한 부분이 많아 읽으면서 ‘나 뿐만 아니구나.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은 많구나. 게다가 저자는 저널리스트로서 성공한 커리어를 갖고 있음에도 이런 수모를 겪구나’하면서 힐링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공감한 부분을 써보겠다.

1. 콘텐츠 마케팅이라는 허물 좋은 빈 껍데기

이전 직장에서 콘텐츠 마케팅을 담당해서 그런가. 이 ‘천재들의 민낯’이 마냥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코카콜라 및 다른 글로벌 브랜드에서 시작한 브랜드 저널리즘은 마케팅계에 변화를 주었다. 이제 단순한 홍보/광고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이 아닌 스토리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잠재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이에 기반해 우리 비즈니스를 홍보한다. 나아가 브랜드와 크게 관련이 없지만 인지도 및 이미지를 위해 잡지를 발행하거나 컨퍼런스를 열기도 한다.

그럴싸한가? 사실 콘텐츠 마케팅의 민낯은 이 책에서도 다루지만, 검색 노출을 위한 단순 블로그 글 생산 공장에 지나지 않는다. 000하는 법 3가지, 000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 5가지, 요즘 000을 많이 찾는 이유 등의 클릭을 유도할 제목 아래 정말 유용한 정보가 아닌 그럴싸하게 포장해 재생산한 콘텐츠만 있을 뿐이다.

난 이걸 위해 1년간 일했고 환멸을 느껴 퇴사했다. 어떤 방향이든, 어떤 글이든 결국 쓰레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딴 수준의 글을 생산하는 내가 한심했고, 이걸 통해 잠재 고객에게 얼마나 노출했고(조회수), 그 고객들이 얼마나 우리 사이트에 들어왔고(클릭 수), 그리고 가입을해서 서비스를 이용했는지(전환율)를 매번 트래킹하여 보고하는 일도 집어치우고 싶었다. 결국 숫자를 위해 이 짓을 하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우리 이용자와 잠재 고객에게 필요해서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이 뿌린 단순 덫에 불과했고 그 결과를 보고해야 했다.

천재들의 민낯도 이 콘텐츠 마케팅이라는 블로그 글 생산 공장에 대해 비판과 풍자를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마케팅계 사람들에 대해 몇 번 언급을 하는데 정말 웃프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바보다. 손아귀에 움켜진 것을 절대 놓치려 들지 않으며 자기 홍보에 열중한다. 스스로를 ‘제품 마케팅 프로’, ‘그로스 해커’, ‘창의적인 록스타 인턴’, ‘대중 연설가’등으로 묘사하며 이력을 뻔뻔하게 부풀리는 사람들이다.

마케팅 분야의 사람들은 리더십에 집착하는 경향이 다분했다. 마케팅 관련 회의에 참석하면, 멍한 표정을 한 마케팅 분야 종사자들로 가득 찬 강당에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이 리더라고 말하는 강연자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애석하게 한국에도 이런 분들 많다. 자기 스스로를 마케팅 전문가, 그로스해커 등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하는 미사여구를 붙여 자신을 자랑하거나 나타내나 실상 허물 좋은 껍데기인 경우가 많다.

2. 자본 잠식인 스타트업 비즈니스 구조

허브스팟을 비롯한 미국 실리콘 밸리의 다수 스타트업 비즈니스는 이렇다. ‘고속성장 적자경영, 기업공개, 부자되기’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유니콘 기업이라는 쿠팡도 한국의 아마존을 꿈꾸며 아직 한창 적자경영 중이다. 그놈의 시장은 언제 다 먹어치워 충분한 몸집을 키우는지 알 수 없다. (아마존은 AWS라도 있지, 쿠팡은 알짜배기 수익이 나오는 아이템도 아직 없다)

이전 회사도 그렇고, 현재 몸 담고 있는 회사도 적자 경영이다. 스타트업 종사자가 아닌 이상 적자경영이 뭔말인지 모르거나, 안다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돈을 못 버는 회사인데 월급은 제대로 나와?

스타트업의 미래 성장성을 보고 밴처캐피탈리스트를 비롯한 투자사에서 막대한 투자를 한다.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은 이 투자금을 통해 고속성장을 기록하고 점점 수익을 내기 시작한다. 결국 IPO를 통해 투자사에게 갚거나, 더 많은 돈을 유치하고 혹은 인수합병을 통해 회사를 팔아넘긴다. 이렇게 되면 누가 이득? 창업자와 투자자다. 어떻게 보면 봉이 김선달보다 더 대단한 사업가다. 돈 까먹는 사업 만들어서 팔아 넘겨(기업공개도 결국 대중에게 주식으로 파는 셈이니) 막대한 부를 쌓는다.

3. 독특한 사내 문화를 기반으로 한 착취

무제한 간식 제공, 조식 제공, 중식 제공, 제한 없는 휴가, 평등한 사내 커뮤니케이션, 영어 닉네임으로 서로 부르기, 회의 없는 하루, 회식 자유 등은 스타트업 채용 공고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대기업의 그 딱딱하고 답답한 군대식 기성 조직문화에 치를 떠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기업 문화다. 그래서 정말 행복할까?

실상은 저임금 고효율이다. 앞서 말했듯 스타트업은 적자경영이 대다수다. 그러므로 비용을 최대한 줄여 매출 및 회계 흐름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가장 줄이기 쉬운 것은 인건비다.

허브스팟 또한 입사자 오리엔테이션부터 세뇌에 들어간다. 마치 하버드만큼 들어오기 어려운 곳을 당신들이 해냈다고 하며, 허브스팟의 사내 문화에 대한 극찬을 끊이지 않는다. 결국 이 회사가 처음인 갓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역시 여기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며 낮은 임금에도 높은 만족도를 기록하며 다닌다.

만약 내가 헬리건이나 다미시, 또는 크레니엄이었더라면 나 역시 그들과 똑같이 했을 것이다. 수백 명을 고용해 공짜 사탕과 맥주를 무제한 공급하며 그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주입했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세대 차이일 수도 있지만 상식적으로 공짜 사탕이나 조식 제공, 근사한 인테리어에 쓸 돈으로 그냥 내 임금 더 올려주면 좋겠다. 회사는 회사고 가정은 가정이다. 공짜 사탕도 좋지만 내 아이를 먹일 끼니가 더 근사하면 좋겠다고. 하지만 주변 어린 동료들은 공짜 사탕에 뭐 문제있냐고 물어본다. 애초에 사고 방식이 다른 셈이다.

나도 사회초년생일 때 이렇게 순진한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스타트업 몇 군데 다녀보니 알겠다. 그냥 연봉 높은 것이 깡패다.

4. 올바른 의사결정 시스템의 부재

평등한 커뮤니케이션은 좋은데 올바른 의사결정 시스템과 책임을 갖는 구조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 업무를 바르게 가이드해주고, 지시하고, 확인해주는 경우가 없다. 좋게 말해서 스타트업은 ‘스스로 일을 찾아 벌려서 임팩트를 만드는 인재’를 원하는데 이걸 까놓고 말하면 누구 하나 책임져 줄 구조가 되지 못한다는 말을 스스로 하는 셈이다.

‘우리는 프로를 원합니다.’, ‘우리는 당장 함께 임팩트를 만들어 낼 팀원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사람’

막상 들어가보면 내 일이 무엇인지 역할과 책임(R&R)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고 날 뽑아놓고 뭘 기대하는건지 어리둥절할 때도 있다. 결국 채용하는 담당자도, 대표도, 회사도 스타트업이기에 아마추어다. 이런 문제는 보통 초기 스타트업에서 많이 발견된다.

게다가 정확한 역할 분담과 책임을 갖는 구조가 없으면 의사결정이 이랬다 저랬다 쉽게 바뀌고, 어떤 경우 팀 자체가 너무 어이없이 휘둘리는 경우도 많다. 피곤하다.

“스타트업에는 아주 큰 비밀이 있는데, 그게 뭔지 알고 있나?” 하비가 한 말이다. “아주 큰 비밀이란 누구도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알지 못한다는 거야. 경영에 대해서라면 완전 아마추어에 불과해. 그때그때 아귀를 맞춰나갈 뿐이지.”


5. 결국 사람을 갈아 넣는 스타트업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을 꿈꾸는 사람은 높은 성장성을 자랑하는 회사에서 자기도 그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하고 싶은 욕심이 있거나, 보기에 아름다운 사내 문화 때문일 것이다.

결국 스타트업은 기본적으로 인재를 갈아넣어 움직이는 존재다. 갓 대학 졸업한 사회 초년생을 대체가 쉽다. 말그대로 블로그 글 쓰는거 너 말고도 할 사람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 일을 위한 일도 많고, 역할도 분명하지 않아 잡무도 굉장히 많다. ‘난 마케팅을 하러 왔는데 왜 이것까직 하고 있나’하는 생각도 많이 들게 만드는 곳이다.

저자는 기존의 대기업과 대규모 제조업들의 경우 연차별로 제공하는 꽤 괜찮은 연봉, 그리고 은퇴까지 약속하는 안정적인 고용, 가정에 도움되는 복리후생을 어필하여 인재들을 데리고 왔다면, 요즘 스타트업은 높은 성장성, 그럴싸한 조직 문화로 매우 낮은 연봉으로 사회초년생을 데려와 언제든 대체해버리는 구조라고 한다. 그럼에도 이런 기업의 도덕성에 대한 잣대보다는 버블로 둘러싼 업계를 비판한다.

그리고 미국 실리콘밸리의 다수 스타트업 창업가에 대한 비판도 그치지 않는다. 결국 이런 구조를 통해 사업을 굴리고, 키워 부자가 되는데 여기서 생기는 수많은 비도덕성은 누가 책임지는 것인가이다. 상대적으로 어린 직원들을 데리고 아름답게 착취하고,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겠다면서 투자금을 유치하고 이를 허비하는 무책임함까지. 그럼에도 지금의 창업가들은 매우 순진하고 고결하고 단순하다.

“그 사람들을 오랜 시간 관찰한 바에 따르면, 다들 스스로 도덕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해요. 고결한 진실성을 가지고 경영에 임하고 있다고 꽉 믿고 있다는 얘기지요. 자신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실제로 그렇지 않지만”
바로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틀린 말도 아니다. 적어도 그들 자신을 위해서는 그럴 것이니 말이다.

총평

스타트업 창업가나 종사자, 그리고 취업 희망자는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스타트업의 장점도 많다. 하지만 장점에 비해 단점이 너무나 알려져 있지 못하다. 특성상 두루뭉실하고 애매한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저자 댄 라이언스는 직접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며 그 애매하고 요상한, 두루뭉실한 문제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모든 스타트업이 이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기업이란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인재를 고용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회적 역할도 반드시 수행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스타트업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열정과 핑크빛 미래를 제시하며 현재를 착취하는 스타트업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우리 종사자들도 현실을 직시하고 올바른 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