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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문학

폴 오스터(Paul Auster)의 선셋 파크(Sunset Park)를 읽고서

by cardo 2020. 3. 23.

폴 오스터의 소설은 매혹적이다. 미국의 어느 지역을 중심으로 현실적이면서 신비로운 세계관을 구축하는데, (여기서 폴 오스터는 현실적인 그리고 신비로움을 동시에 구사한다) 독자는 홀린 듯이 빨려 들어간다.

 

난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감탄했다. "와 진심으로 너무 재밌다!"

 

선셋 파크에 나오는 인물들은 뭔가 하나씩 고장 났다고 할까,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다들 한구석이 무너진 인생이다. 총명한 명문대생에 화목하고 부유한 집안이지만 고등학생 때 의붓형제와 싸우다 밀쳐 사고로 죽은 모습을 본 주인공부터 중학생과 사랑을 나누다 덜컥 임신하여 낙태시킨 적 있는 여자, 남자 친구와 사이가 좋지 않고 스스로 뚱뚱하다고 자괴하며,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하며 자존감을 잃어가는 여자, 그리고 여자에게 인기도 없고 남자 주인공을 좋아하는 것 같고 그럴듯하게 이루어낸 건 없는 남자. 모두 뭐 하나 이상하다.

 

근데 이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일까? 폴 오스터는 누구에게나 있을 그 무너진 구석 하나씩 모아 인물을 구성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들이 선셋 파크의 버려진 집에 모이고 살고 일들이 벌어지고 다시 떠난다.

 

소설 막바지까지 사실 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다 할 서사랄까 긴장감이나 반전이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아니다. 공중곡예사도 그렇고 이야기의 서사는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난 소설에 잔뜩 빠져 있는데 다 읽고 나면 사실 엄청난 반전의 소설이라던가, 특별한 주인공이나 장치가 있는 소설은 아니다. 그냥 매혹적인 이야기랄까. 책을 펼치면 잠깐 홀렸다가 돌아오는 기분이다. 이게 폴 오스터의 스타일인가... 힘인가... 여하튼 정말 부러운 소설이다. 참 부러웠다. 어쩜 이야기를 이렇게 써 내려갈까. 어쩜 이렇게 재밌을까.

 

별 내용도 아닌 소설. 사실 예술이란 게 유용한가. 재미있고 마음 한 구석에 뭔가 남은 듯한 잔상이 있으면 그걸로 성공이다. 예술을 하려고 노력하는 수많은 작품들도 쉽사리 하지 못한다.

 

하여튼 폴 오스터 소설은 참 재밌다! 물론 에세이는 빼고. 에세이는 뭐라고 말하는지 통... 하루키는 소설보다 에세이, 폴 오스터는 에세이보다 소설! 특히 하루키는 에세이, 단편소설, 중편소설, 장편 소설 순이다. 하루키도 여간 독특한 게 아니라서 장편은 기가 빨린달까. 별 내용도 아니고 자기 세계관을 반복 변주하는데 난 그 세계관을 장편으로 읽을 정도의 애정은 없다.

 

하지만! 에세이는 재밌다. 참 재밌는 인간이 소설을 쓰는구나 정도. 폴 오스터는 참 별거 아닌 소설을 매력적으로 쓰는구나. 헤밍웨이는 뭐 이리 인간이 위대해. 근데 문체는 왜 이리 멋있고 솔직해. 피츠제럴드는 겉은 화려하고 멋진데 속은 아파 어딘가.

 

결론은 재밌게 읽은 소설은 그 시간과 비용, 노력이 전혀 아깝지 않고 고마움을 느끼게 해 준다라는 사실이다. 폴 오스터는 참 고마운 소설가다.

선셋 파크
국내도서
저자 : 폴 오스터(Paul Auster) / 송은주역
출판 : 열린책들 201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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