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은 순한글 소설 그리고 한국 근대 소설 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작가 중 한 명이고,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승옥의 단편 소설을 읽으면 현대적, 도회적 그리고 서울과 젊은 남녀가 떠오른다.
무진기행을 필두로 10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하나하나 읽어나가면 마음속 깊이 던지는 파문의 크기가 작지 않았다. 특히, 상경한 젊은이의 입장으로 갑갑하고 비인간적인 서울과 무수한 사람들을 집어삼킬 듯한 콘크리트, 처절한 외로움 그리고 차가운 아우성들을 공감하며 50년이라는 지난 세월이 무색할 만큼 깊이 이입하여 읽었다.
당대 한국 소설의 기린아였던 김승옥도 현재의 관념과 도덕성으로 만든 잣대를 피할 수 없는데 그중 가장 큰 부분은 페미니즘이다. 그의 소설 속 대다수 여자가 수동적, 성욕의 먹잇감, 강간, 폭행 등에 노출되었으며 남성의 시선으로 폭력적으로 묘사된 바도 적지 않다. 남자인 내가 읽어도 요즘의 기준에 맞지 않은 표현과 내용, 사상이 느껴져 불편했는데 이 글을 읽는 요즘의 여자들의 심기는 얼마나 불편했을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김승옥은 아직 읽힌다. 시대의 도덕성에 맞지 않다고 비판받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집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다. 난 그의 '필력', '문장력', '문체', '스타일'로 설명할 수 있다.
그의 소설은 이전 시대의 소설과 확연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지금 읽어도 낡음을 느낄 수 없고, 묘사하는 서울은 그렇게 다를 바 없다. 세밀한 표현력과 날카로운 시선을 담은 문장, 그리고 읽다보면 조금씩 소설에 젖어들게 만드는 그만의 스타일은 앞으로도 계속 사랑받을 것이다.
단편집 속 그밖의 작품들에 대해
그의 소설 속 화자를 나열해보면, 젊은 남성 일곱, 젊은 여자 하나, 어린 소년 둘이다. 어린 소년들은 누나나 이웃 누나가 강간당하는 걸 보거나 알게 되며, 강한 힘과 성숙에 대한 욕망과 동시에 여자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을 갖게 된다. 강간당한 누나를 위해 분노하지만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강간했던 버스 차장 놈을 노려보지만 그 속에는 그의 강한 힘에 대한 선망도 있다. 결국 누나는 이를 계기로 취직했고 어린 소년은 더럽다고 외치지만, 누나가 일하는 버스가 지나갈 때면 달려 나가 구경 나간다.
젊은 남성들은 다들 부끄럽다. 이른바 찌질하다. 술에 취해 서울 밤거리를 쏘다니거나, 여자를 욕망하지만 뭐 되는 게 없다. 젊은 남성의 특징이다. 서투르고 난폭하고 공허하다. 특히 서울의 남성은 수많은 욕망과 이기에 치이지만 어디 하나 기댈 곳 없다. 비판과 분노가 있지만 행동은 하지 못 한다.
유일하게 젊은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은 야행이다. 경제적 안정을 위해 같은 직장을 다니는 남편과 남남처럼 연기하고, 이에 염증을 느끼고 또 너무나 연기를 잘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비뚤어진다. 대낮에 행해진 강간으로 인해 이런 답답함은 어두운 성욕으로 분출되고 밤마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강한 폭력에 의해 제압당하길 바란다. 문제가 있는 관념이지만, 직장에서 여성의 불안한 위치 그리고 이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한편으로 폭력적인 시선과 강박에 둘러싸옇다는 점을 잘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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