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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문학

책 리뷰: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by cardo 2020. 4. 19.

몸은 고갱의 일생을 다룬 소설을 쓰고 싶어 했고 이는 '달과 6펜스'다. 주인공 '나'는 스트릭랜드(소설 속 고갱이 허구화된 인물)를 관찰하고 조사하고 이를 기반으로 글을 쓴다. 소설의 형식은 3인칭 관찰자 시점.

 

실제 고갱의 삶과 같은 내용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구성된 줄 알았으나 사실과 다른 내용도 많다. 고갱이란 인물을 따와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볼 수 있다.

 

화가 이전 직업은 주식 중개인으로 같으나, 파리로 가게 된 계기는 다르다. 스트릭랜드는 갑자기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화가의 길을 위해 떠난 것처럼 나오나 실제 고갱은 경제 위기로 주식 중개인 직업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이로 인해 이혼을 한다. 그리고 20대 때부터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다.

 

서머싯 몸은 예술혼에 불타오르는 한 화가를 통해 인간의 잣대로 어느 정도까지 용납이 될 것인가,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도덕적 기준은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듯하다. 가족을 일순간에 가차 없이 버리고, 자신을 도와준 친구를 비웃고 그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고 그리고 그녀를 버리고, 짐승같이 살다 타히티로 떠난다. 하지만 파리로 떠나서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무언가 내적으로 느끼고 있는 열정, 예술혼을 표현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는 점이다. 스트릭랜드는 이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예술가에 대한 평가로 우리는 도덕적 기준을 빼놓지 않는다. 도덕적, 사회적으로 그는 옳은가, 요즘 젠더 이슈가 대두되고 있는데 예술가의 젠더 문제나 성 문제는 어떤 식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만약 어느 남성 시인이 여성 혐오적 발언을 했으나 그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시에 미쳐있는 한 명이고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자신이 가진 어느 이야기를 언어로 풀어내고 평생을 바치는 것이라면 아무리 우리가 잣대를 들이밀어도 스트릭랜드처럼 차갑게 깔보듯 비웃지 않을까?

 

우리나라 소설 '광염소나타'도 비슷한 내용을 다룬다. 한 천재적 피아니스트는 연주의 영감을 받기 위해 방화, 시체 훼손,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른다.

 

물론 스트릭랜드는 범법적 기준을 넘어선 행위는 아니었으나 예술가에게 도덕이란 어떤 의미일지 고민하고, 우리에게 혹시 속물성, 아이러니, 이중 잣대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인물이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욕하면서 우리는 떳떳한가. 예술가의 젠더 발언은 비웃는데 우리는 얼마나 올바른가.

 

밑줄 친 구절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으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어 전설을 지어낸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 범상한 삶에 대한 낭만적 정신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전설적인 사건들을 주인공을 불멸의 세계로 들여보내는 가장 확실한 입장권이 되어준다.
작가는 글쓰는 즐거움과 생각의 짐을 벗어버리는 데서 보람을 찾아야 할 뿐, 다른 것에는 무관심하여야 하며, 칭찬이나 비난, 성공이나 실패에는 아랑곳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파리의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거리에는 늘 사람의 피를 달아오르게 하고 뜻밖의 일에 대한 기대로 마음을 설레게 하는 활력이 넘쳐흐른다.
"어째서 그런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중략)"나는 그려야 해요."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나는 남들의 의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무지에서 오는 허세이다.
"당신 생각은 왜 그래?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버려져 있다고 생각해?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 없이 주워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
"정말 대단한, 정말 굉장한 그림이었네. 경외심마저 느껴질 정도였어. 하마터면 무서운 범죄를 저지를 뻔했네. 나는 그림을 좀더 잘 보려고 몸을 옮겼네. 그때 뭔가 발에 걸려서 보니 내가 떨어뜨린 그림 주걱이었네. 소름이 쫙 끼치더군."
습관이 오래되면 감각도 무뎌지게 마련이지만 그러기 전까지 작가는 자신의 작가적 본능이 인간성의 기이한 특성들에 너무 몰두하는 나머지 때로 도덕의식까지 마비됨을 깨닫고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끼는 때가 있다.
작가는 논리를 갖춘 철저한 악한을 창조해 놓고 그 악한에게 매혹당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나의 의견을 상대방이 얼마나 존중해 주느냐에 따라 상대방에게 미치는 나의 힘을 측정하는 경향이 있다.
달과 6펜스
국내도서
저자 : 서머셋 몸(W. Somerset Maugham) / 송무역
출판 : 민음사 200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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