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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비문학

책 리뷰: 문학 공모전 대가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

by cardo 2020. 12. 23.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12년을 공부한다. 그 과정에는 좋은 중학교, 좋은 고등학교를 위한 공부도 포함된다. 대학이 끝이라고 했지만 이제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대학은 또 다른 시작이란 것을. 

 

좋은 회사를 가기 위해 4년을 준비한다. 휴학기간과 졸업 후 취업 준비 기간을 포함해도 6년은 보통 된다. 보통 대학생들은 학업에 치이고, 알바에 시간을 뺏기고, 좁은 일자리 문에 붙잡혀 엉엉 울고 싶다.

 

기업 구직의 형태는 어떤가 모두 훌륭한 양질의 일자리인 대기업에 가기 위해 준비하는데 이마저도 시험이다. 인적성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 정육사면체 도형에서 오각형이 몇 개인지 알아야 하고, 숫자 나열에서 법칙을 찾고, 사자성어 테스트까지 통과해야 한다. 

 

기업 구직을 포기한 젊은이들은 공무원이나 각종 전문직 시험으로 빠진다. 9급 공무원, 7급 공무원, 5급 공무원(행정고시, 회계사, 변리사, 세무사, 법무사, 노무사 등등 일자리를 갖기 위한 다양한 시험이 있다. 이런 인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시험은 단연코 9급 공무원 시험이다. 여기에는 교정직(교도관), 경찰, 소방관, 군인 모두 포함이다.

 

우리는 시험 속에 살고 있다. 한번의 시험이 인생을 결정하고, 시험마다 기수가 생겨 기수 문화도 있고, 동기를 찾는다. 군대 문화, 관료주의 모두 이런 형태에서 비롯된다.

 

예술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 입상을 목표로 긴 세월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냥 소설책 내면 안되냐고 묻지만 출판계에서는 엄연히 신춘문예나 출판사 문예전에 당선된 작가와 아닌 작가의 처우와 인지도가 다르다고 한다. 일단 일종의 테스트를 통과해 입성한 작가의 위상은 대단하다. 

 

장강명은 이런 르포의 적임자이면서도 이율배반적이다. 한 해에 3개의 문예전을 휩쓴 공모전의 총아이기 때문에 가장 그 덕을 많이 본 작가 중 하나다. 하지만 그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샅샅이 뒤져본다. 출판계의 여러 이해당사자들을 인터뷰한다. 대표부터 편집자, 공모전 심사위원까지 그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선을 다 잡아본다. 

 

결국 문학의 세계는 다른 세계와 다르지 않다. 일맥상통한다. 공모전 당선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상 우리 사회의 모든 면을 다룬다. 입시, 취업, 공무원, 예술 모든 형태의 문턱들. 이는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현상이기도 하다. 과거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당선, 합격으로 발생하는 계급제도'다. 이 제도의 단점과 장점 모두 살펴보며 작가와 함께 또다시 우리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밑줄 친 구절

 

과거 제도는 사회의 창조적 역동을 막았다. 이 제도는 블랙홀처럼 온 나라의 젊음과 재능을 빨아들였다.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시험만 잘 치면 순식간에 기득권 핵심부에 들어설 수 있다는 약속만큼 달콤한 것도 없다. 유능한 청년들이 자기 주변에 있는 중소 규모의 지적, 산업적 프로젝트에 관심을 거두고 중앙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통과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합격자들은 그 질서의 가장 열렬한 수호자가 되었다. 고작 생원이나 진사 정도의 자격증을 얻은 이조차 그랬다. 

 

교수의 추천으로 부동산 회사에 입사한 과 선배가 있었는데, 다들 그런 방식은 뭔가 부적절하고 수치스럽다고 여겼다.

 

우리 대부분은 그 간판들의 위상 변화에 극히 예민하다. 자신이 달고 있는 간판의 가치가 어느 정도나 나가는지에 신경 쓴다. 다들 그렇게 음흉해지고 위선자가 되어 가는 듯 하다.

 

간판의 힘은 정보 부족에서 나온다. 독자나 출판사가 등단 작가를, 구직자가 대기업을, 기업이 명문대 졸업생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이다.

 

잘못된 선택을 내렸을 때 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억지로 모험을 강요할 수는 없다. 

 

당선, 합격, 계급
국내도서
저자 : 장강명
출판 : 민음사 2018.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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