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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문학

책 리뷰: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이마무라 나쓰코

by cardo 2021. 1. 7.

간만에 읽은 일본 소설. 한 권의 얇은 내용에 새콤달콤한 사과를 씹어먹는 듯한 맛이 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라는데 아쿠타가와상이 뭔지 모른다(나이 스무살 넘어서는 작가와 작품의 수상 경력보다는 내가 좋아할만한 걸 알아서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소설은 노란색 카디건이 보라색 치마를 관찰하는 이야기다. 정체를 알 듯 모를 듯, 내가 관찰하는 보라색 치마와 실제 이 인물은 전혀 다른 사람인 점에서 재밌고 다들 멀쩡한 정상인인 척하지만 보라색 치마처럼 다들 이상한 구석이 있는 그런 설명도 흥미로웠다.

 

다 읽고 나니 '응...?? 내가 뭘 읽은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소설을 읽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끝나버린 이야기가 아쉬워 쩝쩝 입맛만 다실 때 깨달았다. '으흥, 역시 이게 또 소설의 맛이지.'

 

다양한 음식과 다양한 맛이 존재하듯 소설의 세계에도 다양한 맛이 존재한다. 자극적이고 톡 쏘는 웹소설이라던가, 푹 삭힌 묵은지가 떠오르는 고전이나 상콤달콤한 중편 소설, 그리고 스낵처럼 먹을 수 있는 단편소설 등.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는 마이쮸 같다. 싸고 양도 적은데 다 먹고 나면 쩝쩝 벌써 다 먹어버렸나 싶은. 먹을 때만은 입이 즐겁고 녹는 줄 모르고 입 안에서 굴리는 그런 소설 같다. 

 

노란색 카디건이 관찰하는 보라색 치마의 이야기는 신선하면서도 재밌었고 나도 함께 보라색 치마를 관찰하고 있었다. 보라색 치마는 잠깐 일하다 쉬고, 또 일하다 쉬는 동네의 반백수다. 동네 사람들과 말도 섞지 않고 길거리에서조차 아무도 그녀와 접촉할 수 없다. 보라색 치마는 잽싸게 사람들 사이를 피해 다닌다. 조용하게 그녀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머리도 감지 않고, 손톱도 아무렇게나 기르고 때가 껴있는데 누가 뽑아주겠는가. 안타까웠던 노란색 카디건은 몰래 샴푸 샘플을 현관문에 걸어다 준다. 그이후 호텔 청소부에 취업을 성공한다. 처음에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는데 생각보다 씩씩하고 일도 잘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보라색 치마는 변한다. 말도 잘하고 주변 사람들과도 잘 어울린다. 그러다 이상한 소문까지 나고, 그녀는 상식 밖의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게 비상식인지 상식인지 분명한 선을 알 수 없다. 상식적인 사람들의 일탈과 그걸 구분하지 못하는 보라색 치마의 돌발 행동까지 이어지는데...

 

나른한 일요일 오전 할 것도 딱히 없는데 책이나 한 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 때 이 소설을 고르면 좋다. 양도 부담없어 단번에 끝낼 수 있고, '음...이정도면 꽤 시간 잘 보냈군'하는 마음이 들 것이다.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국내도서
저자 : 이마무라 나쓰코 / 홍은주역
출판 : 문학동네 20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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