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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문학22

책 리뷰: 극해, 임성순 / 극한에 몰린 선원들의 처참한 생존기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극한으로 몰고 갔을까. 극해를 다 읽은 밤 난 몸서리치며 인간을 혐오했다. 인간이란 동물이 무서웠고, 극한에 몰린 그들의 처절한 생활기가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현실적이라, 극해 속 포경선에 갖힌 인간들의 군상이 치가 떨리도록 느껴졌다. 소설가 임성순의 '극해'는 일제강점기 시대 포경선이었던 배가 일제 해군으로 차출되어 일본인 상급선원들과 조선인, 대만인, 필리핀인 하급선원들이 항해하는 이야기다. 말이 좋아 항해이지 태평양이라는 연옥을 떠도는 고문과 마찬가지다. 그들은 인간이기를 버린 것인지, 원래 인간이란 이런 것인지 궁금하게 할 정도다. 오랜만에 날 극도로 몰아세우는 한국소설을 만났다. 강력추천한다. 밑줄 친 구절 왜 고통받는 사람들이 오히려 타인의 고통에 무감.. 2021. 2. 22.
책 리뷰: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이마무라 나쓰코 간만에 읽은 일본 소설. 한 권의 얇은 내용에 새콤달콤한 사과를 씹어먹는 듯한 맛이 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라는데 아쿠타가와상이 뭔지 모른다(나이 스무살 넘어서는 작가와 작품의 수상 경력보다는 내가 좋아할만한 걸 알아서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소설은 노란색 카디건이 보라색 치마를 관찰하는 이야기다. 정체를 알 듯 모를 듯, 내가 관찰하는 보라색 치마와 실제 이 인물은 전혀 다른 사람인 점에서 재밌고 다들 멀쩡한 정상인인 척하지만 보라색 치마처럼 다들 이상한 구석이 있는 그런 설명도 흥미로웠다. 다 읽고 나니 '응...?? 내가 뭘 읽은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소설을 읽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끝나버린 이야기가 아쉬워 쩝쩝 입맛만 다실 때 깨달았다. '으흥, 역시 이게 또 소설의 맛이.. 2021. 1. 7.
책 리뷰: '일인칭 단수' 오랜만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집 오랜만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집 '일인칭 단수'를 읽었다. 솔직해지자면 난 단 한 번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중편 소설인 노르웨이 숲,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애프터 다크 등은 읽었으나 '1Q84, 기사단장 죽이기'등은 읽지 않았다. 진정한 하루키스트는 아니나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 (에세이를 제일 좋아하고, 그다음 단편소설, 중편 소설, 장편소설 순서다. 어떤 의미로 하루키의 팬이라고 말하기 조금 그렇다) 읽은 소감을 바로 말하자면 이번 '일인칭 단수'는 개인적으로 별로였다. 예전 '여자없는 남자들'은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 '일인칭 단수'는 뭐랄까... 말년의 하루키가 하루키한 하루키의 소설이랄까? 자기 복제의 느낌이 매우 강.. 2020. 12. 23.
책 리뷰: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찰스 부코스키 내가 제일 재밌게 본 영화 중 하나를 손꼽으라면 두 번째 집게손가락쯤에 위치할 영화는 '기사 윌리엄'이다. 중세 배경으로 은근히 현대적 요소를 섞은 스토리에, 주인공 히스 레저의 시원한 외모와 연기 그리고 곳곳에 위치한 미소 포인트 등 골고루 마음에 드는 영화다. 영화에서 음유시인 캐릭터가 한 명 나온다.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다. 벌거벗겨 쫓겨난 채로 노래를 부르다 주인공을 만나고, 술과 여자에 빠져 살지만 비상한 머리와 뛰어난 세 치 혀놀림으로 먹고사는 인물이다. 가진 것은 없으나 원하는 것을 가지며, 집은 없으나 행복하게 떠도는 음유시인이다. 주인공이 경기에 참가할 수 있도록 크나큰 역할을 하기도 하며, 대결 전 현란한 찬사를 능숙하게 노래한다. 갑자기 왠 '기사 윌리엄'이냐면, 여기 나오는 음유시.. 2020.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