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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37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을 읽고 나서 이게 벌써 몇 번째 하루키 에세이집이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달리기를 할 때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라디오, 일상의 여백,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잡문집. 그리고 이번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아마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만 읽는다면 이제 그만 읽겠지. 하루키의 소설도 꽤 읽었지만 에세이만큼 재밌지 않다. 본업은 소설가지만, 소설이 맥주고 에세이가 우롱차라면 이왕이면 세계 최고의 우롱차를 만드는 맥주회사가 되어보겠다고 했었나? 거참, 나는 이미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맥주회사가 만드는 우롱차에 푹 빠져버렸다. 귀사의 스테디셀러 맥주보다 사이드 음료가 내 스타일이라고 고백하고 싶다.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은 1980년대 말 비교적 젊은 하루키의 에세이집이다. 아직 세계적인 거장의 명성을 얻기.. 2020. 3. 25.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을 읽고서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은 신비롭다. 하얀 성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서사가 꽤 독특하고 신비로운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읽고서 한참 생각하고 정리했다. 하얀 성이 신비로운 이야기인 이유를 크게 3가지로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 인물들에 대한 외양새 묘사가 없다.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인물들이 머릿속에서 활동하다 보니 내 상상의 폭이 커지고 그만큼 신비성이 깃들었다. 두 번째, 대화가 없다. 소설 스타일이겠는데, 대화가 단 하나도 없다. 그가 어쩌저찌하다고 말했다.라고만 표현한다. 직접적으로 주고받는 패스가 없으니 어떤 형태로 감정과 사건이 형성되는지 일방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마지막으로 1인칭 시점으로 ‘나’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이 속내를 알기 어렵다. 오르한 파묵이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과 연관된 시.. 2020. 3. 24.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고서 김승옥은 순한글 소설 그리고 한국 근대 소설 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작가 중 한 명이고,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승옥의 단편 소설을 읽으면 현대적, 도회적 그리고 서울과 젊은 남녀가 떠오른다. 무진기행을 필두로 10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하나하나 읽어나가면 마음속 깊이 던지는 파문의 크기가 작지 않았다. 특히, 상경한 젊은이의 입장으로 갑갑하고 비인간적인 서울과 무수한 사람들을 집어삼킬 듯한 콘크리트, 처절한 외로움 그리고 차가운 아우성들을 공감하며 50년이라는 지난 세월이 무색할 만큼 깊이 이입하여 읽었다. 당대 한국 소설의 기린아였던 김승옥도 현재의 관념과 도덕성으로 만든 잣대를 피할 수 없는데 그중 가장 큰 부분은 페미니즘이다. 그의 소설 속 대다수 여자가 수동적, 성욕의 먹잇감, 강간,.. 2020. 3. 24.
아툴 가완디(Atul Gawande)의 어떻게 일한 것인가(Better) 요즘 나오는 베스트셀러 코너에서는 각기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책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마케터의 일',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카피라이터', '소설가', '작가', '프로그래머', 그리고 무수한 창업가들의 이야기들이 팔리는 세상이다. 우리 삶에 가장 밀접한 산업이자 직업 중 하나인 '의사'에 대해 다룬 책도 늘고 있다. 아직은 그래도 의학계에 종사하는 분들의 사적인 글은 예민하다. 골든아워'의 이국종 교수님이 유명해지자, 너만 의사냐라는 동업인들의 눈초리가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미국이라고 하지만 그 직업의 분위기와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고 영민한 사람들이 의대를 꿈꿔왔고 다른 사람들은 의대생, 의사를 우러러본다. 사람들의 목숨을.. 2020. 3. 23.